프랑스 셰프의 철학, 그리고 나의 된장찌개
우리 주방의 수장은 고함을 지르는 TV 속 셰프가 아니었다. 프랑스 출신의 지적인 교수님. 그는 지시보다는 철학을 공유했고, 호통보다는 침묵으로 제압했다.
그곳에서 나는 배웠다. "소스가 재료를 이겨서는 안 된다."
진정한 하이엔드 미식의 세계에서 마늘과 고춧가루의 강렬한 자극은 환영받지 못했다. 그들은 숯불 불고기 냄새는 좋아했지만 막상 입에 넣는 건 주저했고, 차가운 국수(냉면)를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그들의 철학이 정답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하루 종일 버터와 트러플 향, '세상의 비계덩어리'들에 시달리고 퇴근한 밤. 나를 구원하는 건 결국 냉장고 속의 시뻘건 김치와 밥이었다. 그 개운하고 맵싸한 맛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야 비로소 나는 '가면'을 벗고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K-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