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소반 위 붉은 홍시
저는 디즈니의 화려한 주방에서 요리를 배웠습니다.
세계최고의 파워를 자랑하는 지도자들, 세계최고의 스타들이 휴가를 오는 휴양지는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도 최고의 품격을 눈요기합니다
세계 최고의 셰프들 밑에서 칼을 갈았고,
세상에서 가장 황홀하다는 맛들을 혀끝으로 경험했습니다.
요리사로서 맛의 정점을 쫓는 시간들이었지요.
하지만 그 화려한 접시들 사이에서도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맛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억 속 한겨울,
뒷마당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마지막 홍시의 맛입니다.
할머니는 그 마르고 굳은 손을 뻗어
가장 붉게 익은 녀석을 따 제 손에 쥐어 주시곤 했습니다.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바람 속에서 한 입 베어 물던 그 차갑고도 달콤한 맛.
그것은 단순히 혀로 느끼는 미각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레시피로도, 아무리 비싼 식재료로도
다시는 재현해 낼 수 없는 '기억'이라는 세계의 맛이었습니다.
지금은 갈 수 없는 시간, 만날 수 없는 얼굴이 그리워
저는 조용히 펜을 들어 그 맛을 그려봅니다.
이별 앞에
만남은 늘 서툴기만 하고
기다림으로 붉어진 홍시가 소반 위에 놓였습니다
마지막 추위에
강물마저 닫힌 날
만남은
눈 덮인 시간 속
잠자는 정거장에서 갈 수 없는 그 땅
소반 위 붉은 홍시는 그리운 그 얼굴을 닮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귀한 선물.
오늘따라 소반 위에 놓인 붉은 홍시가
유난히 그립습니다.
당신이라는 기억으로 짓는 집, 그리고 묵은지
집이 있다는 건, 마치 오래된 묵은지 같은 느낌일까.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해왔지만,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나만의 집을 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잊히지 않는 기억이 손끝에 붉게 물들어 있는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길래 내 마음속 집에 이토록 가득 차 있는 걸까요.
가끔은 스스로 묻곤 합니다. '집이란 게 원래 이런 거였나?'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둔 묵은지 같은 기억들을 잔뜩 꺼내어 놓고는, 혼자 웃다가 또 울곤 하는 그런 곳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꽤 치열한 세상 속에 있었습니다.
레몬과 꿀, 그리고 약간의 고수(Cilantro)를 섞어 미묘하고 복잡한 맛을 내는 소스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던 시절을 지나왔습니다. 그곳은 막대한 시간과 노동, 열정과 야망이 한꺼번에 끓어오르는 일류들의 사회였지요.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화려한 식탁 위에서 가장 맛있었던 기억은 복잡한 소스가 아니었습니다. 신선한 셀러리 향, 그리고 아무런 소스 없이 숯불 오븐에서 방금 꺼내어 썰어낸 로스트비프 한 조각. 우리가 마주 보고 맛보았던 그 투박하고 정직한 맛이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중요한 건 화려하고 섬세한 플레이팅이 아니라는 것을요. 진정한 맛은 혀끝이 아니라, 너를 위해 정성을 다한 나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잘 익은 묵은지가 깊은 맛을 내는 건 배추가 좋아서만은 아닙니다. 그건 할머니의 소금, 그리고 긴 시간을 견뎌낸 인내와 보살핌 때문이겠지요.
나는 이제 그런 집을 지으려 합니다. 화려한 소스로 맛을 낸 집이 아니라, 시간과 정성으로 곰삭은 묵은지 같은 집. 당신이라는 기억이 소금처럼 배어있는 이 집에서, 나는 이제 진짜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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