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말을 걸어올 때

겨울 끝에서, 우리가 건너온 한 줄기 숨

by 고요정

보스턴의 겨울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도

기억까지 얼릴 만큼 차가웠다.


장례식장 밖, 눈발은 사선으로 흩어졌고

우리는 얼어붙은 땅 위에

Betty를 위한 꽃 한 송이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돌아서던 순간, 두꺼운 외투 속 심장만큼은

따뜻하게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 마음이 진심이었을까—

짧은 물음은 눈 속으로 스며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밤,

남편은 말없이 침대에 몸을 누였다.

그의 어깨가 천천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동안

나는 그 곁에서 조용히 숨을 골랐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슬픔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기도였다.


주님,

그의 마음을 잠시라도 덜 아프게—

그의 내면을 당신의 온기로 감싸 주소서.


어머니를 잃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세계가 조용히 접히는 일.

그 위에 내려앉은 애통함은

말이 되지 않은 채 가만히 부풀어 오른다.


이제는 떠난 이를 향하던 마음을

남은 사람을 감싸는 온기로

바꾸어야 함을 배운다.

겨울의 냉기 속에서.


남편의 마음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이 고통 없이 떠오르기를 바란다.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그 기억이 흐려지지 않기를.


나 또한

그분의 고운 미소가

문득문득 그리워진다.


새벽이 깊어지자

방 안에는 겨울의 적막만이 남았다.


그러나 그 적막 아래,

씨앗이 흙을 비비는 듯한

아주 작은 숨이 들려왔다.


오랜 겨울을 밀어내고

언젠가 땅 위로 오르려는

미세한 떨림.


나는 그 떨림을 따라

속으로 작은 문장을 반복했다.


들숨에, “그래, 그렇지.”

날숨에, “그래도 가보자.”


창가에는 윤동주의 별 하나가 걸려 있었다.

나는 그 빛을 마음으로 옮겨

우리의 긴 겨울 위에

조용히 덮어두었다.


겨울은 언젠가 끝난다.

슬픔도 계절처럼

자신의 마지막을 찾아갈 것이다.


오늘 밤만은

남편의 잠이 깊고 평안하길.


그리고 우리가 다시 걸어 나갈 힘을

천천히 되찾을 수 있기를—

나는 아주 작은 숨으로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