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째 듣는 그놈의 "Give me kiss"

미국 남편의 이해할 수 없는 찬사, 그리고 나의 서툰 대답

by 고요정



**​미국 남편의 이해할 수 없는 찬사, 그리고 나의 서툰 대답**

잠이 깨는 순간부터 잠이 드는 순간까지, 징글징글하게 듣는 말이 있다. 벌써 20년째다.

“Give me kiss, give me kiss!”

내 귀엔 이미 딱지가 앉다 못해, 그 소리를 막으려 마음의 담벼락까지 쌓아 올린 지 오래다. 예순이 넘은 내 나이 또래의 한국 아내들 중 남편에게서 “I love you”라는 말을 밥 먹듯 듣고 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듣기나 할까?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느라 분주한 내 등 뒤로 시도 때도 없이 백허그가 훅 들어온다.

“Give me kiss-iya (키스이야)!”

어디서 배웠는지 한국말 조사 ‘~이야’까지 갖다 붙인 그 정체불명의 애교에 짜증이 확 솟구친다.

“Yah! (야!)”

하고 소리쳐 밀어내 보지만, 그는 여태껏 한결같다. 20년 산 고목나무처럼 끄떡도 없다.

그뿐인가. 얼굴을 들이밀며 또 묻는다.

“How do you get so beautiful?” (당신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워?)

이 또한 미치고 팔짝 뛸 만큼 한결같은 레퍼토리다. 나의 대답은 단호하다.

“Because of you (너 때문이지 뭐).”

‘제발 그만 좀 해’라는 뉘앙스를 듬뿍 담아 쏘아붙여도, 그는 이 비꼬는 말투조차 사랑스럽다는 듯 받아들인다.

사실 나는 황당하다. 금발에 파란 눈, 주먹만 한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팔등신 미녀들이 즐비한 이 미국 땅에서 짜리 몽당 한 ‘촌시레’ 소쿠리 같은 나에게 ‘뷰티풀’이라니. 이 미국 남자의 미적 기준은 고장 난 것일까, 아니면 진정성 없는 립서비스 일까. 거울 속 지극히 한국적인 나와 마주할 때마다 현실감이 없어 피식 웃음이 난다.

물론 우리에게도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이 통하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다. 끝장을 볼 기세로 대전투를 치르고 나면, 집안엔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덮친다.

젊은 시절엔 화산처럼 폭발했던 부부싸움 뒤, 집안의 공기가 달라진다.

‘Give me kiss’가 사라지고, ‘I love you’가 증발한다. ‘How do you get so beautiful?’이 자취를 감춘 집에는 무거운 적막만이 감돈다. 서로의 동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요령껏 피해 다니는 냉전이 시작되면, 나는 덜컥 겁이 난다.

‘이 소음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싸운 뒤에 사라진 그 수다스러운 사랑 고백들이 실은 내 일상을 지탱하는 축복이었음을, 그제야 깨닫는다. 그 시끄러운 소음이 다시 돌아오는 날, 나의 ‘즐거운 짜증’이 다시 시작되는 그날이 비로소 평범하고 감사한 일상으로의 복귀인 것이다.

이제는 안다. 일상이 유지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그래서 이제는 싸움 뒤에도 구렁이 담 넘어가듯 슬그머니 넘어가 준다. 나이 들어 기운도 없거니와, 굳이 화해하는 과정에 에너지를 쏟느니 내가 먼저 선수를 친다.

“Give me kiss-iya!”

내가 던진 돌직구 한 방에, 예순 넘은 미국 남편은 마치 미운 일곱 살처럼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래, 이 맛에 산다. 태평양을 건너온 K-여자가 20년 된 껌딱지 남편에게 건네는, 나만의 서투른 사랑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