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육아 일기] 별들의 전쟁: 900마일의 입맛 텔레파시
미국 땅은 참으로 넓기도 합니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지만, 내가 있는 이곳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딸아이가 이사 간 노스캐롤라이나까지는 차로 열세 시간, 꼬박 900마일을 달려야 닿는 거리입니다.
작년, 키 크고 잘생긴 미국 청년에게 "우리 딸 잘 부탁하네"라며 손을 건네주었을 때만 해도 이 거리감이 이토록 시리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 생일이라 늘 선물처럼 느껴졌던 큰딸이, 이제는 스스로가 선물이 되어 새로운 생명을 잉태했다는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새해가 밝자마자 들려온 건 지독한 입덧 소식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 무엇 하나 입에 넣어줄 수 없는 어미의 마음은 타들어 가는데,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세 아이를 가질 때마다 입덧 한 번 없이 지나갔던 나는 스스로를 '무지랭이 엄마'라 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입덧이라곤 몰랐던 내 입안에 이상한 공명이 일어납니다. 딸아이가 겪는 고통이 900마일을 날아와 내 미각에 내려앉은 것만 같습니다.
무말랭이를 하려고 무를 썰어 말린다는 내 평범한 이야기에, 딸아이의 목소리가 들떠 오릅니다.
"엄마, 그 얘기 들으니까 입맛이 돌아!"
직접 무쳐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마음이 아릿했지만, 가까운 한인 마트에서 사다 먹고는 괜찮다며 웃는 딸의 목소리에 겨우 숨을 돌립니다.
어제는 마트에 갔다가 콩나물 라면이 생각나 그냥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슬쩍 꺼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외칩니다.
"엄마! 나도 지금 그게 너무 먹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입맛이, 우리의 영혼이 여전히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요. 척하면 천 리를 본다는 자식의 마음이 올랜도에서 노스캐롤라이나까지 뻗어 있는 모양입니다. 이제는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게 조심스럽습니다. 내 한마디가 딸아이의 입덧을 자극할까 봐, 혹은 견디기 힘든 갈증이 될까 봐 음식 이야기를 아끼게 됩니다.
생명을 품고, 낳고, 키우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야 겨우 '엄마'라는 띠를 허리에 질질 동여매게 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 띠를 겨우 고쳐맸을 땐 이미 남은 세월이 한 치 앞인 듯 아스라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내 딸이 그 길을 걷기 시작했고, 우리가 '입맛'이라는 신비로운 연결고리로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올랜도의 뜨거운 공기 속에서 나는 오늘도 노스캐롤라이나의 서늘한 바람을 맞을 딸을 생각합니다.
"지구라는 행성으로 오고 있는 아가야, 900마일 밖에서도 네 입맛이 내 입맛이란다. 비록 멀리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같은 맛을 공유하며 이 계절을 함께 건너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