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교회, 그래도 우린 사랑해
징글벨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눈 덮인 크리스마스카드의 풍경 대신, 이곳 플로리다 올랜도에는 매끈하게 뻗은 팜트리가 화려한 조명을 휘감고 서 있을 뿐입니다. 한낮엔 반팔 티셔츠를 입어야 하는 성탄절. 처음엔 이 이질적인 풍경이 못내 서글펐습니다. 루돌프가 끄는 썰매 대신 뜨거운 태양 아래 아지랑이를 바라보며, 저는 어느덧 이곳의 계절에 익숙해진 ‘플로리디안’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낯선 계절감 속에서도 우리가 결코 이탈할 수 없는 중력의 중심이 있습니다. 이민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작은 소행성, 바로 **‘K-교회’**입니다.
세상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우리가 아니면 누구도 우리를 깊이 들여다봐 주지 않는 이 도피처 같은 땅에서, 교회는 단순한 종교적 공간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것은 흩어진 마음들이 모여드는 거룩한 ‘도피성’이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깊은 주름 속에 깃든 향수와, 낯선 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천진한 재롱이 한데 뒤섞입니다. 주방 가득 피어오르는 잔치 음식의 김 서린 냄새는 그리운 고향의 공기를 불러오고, 조금은 투박한 발음으로 함께 부르는 찬송은 낯선 타국 땅에서 굳어버린 마음들을 말랑하게 녹여냅니다.
올 한 해도 우리는 참 치열하게 걸어왔습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으며, 때로는 외로움이라는 차가운 바람을 맨몸으로 맞으며 버텨온 시간들입니다.
오늘 밤, 하나님께서는 그 고단했던 발걸음들을 기억하시고 우리에게 ‘가벼운 마음의 노래’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작은 소행성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증인이 됩니다.
“당신, 올 한 해도 참 잘 견뎌냈습니다. 당신의 그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는 그 짧은 손길에서 우리는 실패가 아닌, ‘견디어냄’이라는 가장 고결한 승리를 확인합니다.
비록 하얀 눈은 내리지 않지만, 팜트리 사이로 쏟아지는 별빛은 베들레헴의 그 별처럼 우리를 비춥니다. 세상이 말하는 화려한 성탄보다, 우리끼리만 아는 이 투박하고 따뜻한 위로가 더 소중한 이유입니다.
K-교회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따뜻했습니다. 적어도 내가 머문 그 소행성만큼은 영하의 고독도 침범할 수 없는 온기로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나눈 이 평안이, 이방인의 땅을 살아가는 모든 지친 영혼들에게도 동일한 위로로 스며들기를 소망해 봅니다.
저 멀리 하얀 눈 대신
야자수 잎에 별빛이 앉은 밤
징글벨 소리 잊은 자리
아리랑 가락 서툴게 흐르네.
고단한 한 해 어깨에 지고
작은 교회 문턱 넘어서니
김 서린 잔치상에 웃음꽃 피고
낯선 땅, 따뜻한 소행성 하나.
서로의 눈빛 속에 고향이 있고
손 맞잡은 온기 속에 위로 있네.
주름진 얼굴, 해맑은 웃음
모두가 한 해의 승리였네.
하나님, 이방인의 길 걷는 우리
오늘 밤만큼은 가벼이 노래하오.
팜트리 위 별처럼 빛나는 사랑
영원히 꺼지지 않을 우리의 불꽃.
• 작가 후기: "올랜도의 뜨거운 성탄절, 여러분의 크리스마스는 어떤 풍경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