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詩) 묵은지 항아리를 열다

정오의 심판

by 고요정

정오의 심판


빛이 가장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시각, 그림자조차 발밑으로 숨어버린 이 적나라한 정오에 나는 유죄를 선고받는다.

'슬퍼'라고 명명된 저 파편들은

누가 흘린 배설물인가, 아니면 내가 벗어던진 허물인가.

길 위에도, 내 구부정한 어깨 위에도

의미를 잃은 단어들이 흉측하게 널브러져 있다.


내가 존재한다는 그 명백한 형벌 때문에,

가슴이라는 감옥과 영혼이라는 창살 사이에서

검은 날개를 파닥이는 불길한 전령이 산다.


그 까마귀의 비명이

침묵해야 할 대낮의 정적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때,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이 빛나는 태양 아래 내가 서 있을 곳은

그 어디에도 설계되지 않았음을.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허공에 그은 붉은 궤적을 따라

나의 낮은 그렇게 난도질당한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성(城)의 계단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