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심판
빛이 가장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시각, 그림자조차 발밑으로 숨어버린 이 적나라한 정오에 나는 유죄를 선고받는다.
'슬퍼'라고 명명된 저 파편들은
누가 흘린 배설물인가, 아니면 내가 벗어던진 허물인가.
길 위에도, 내 구부정한 어깨 위에도
의미를 잃은 단어들이 흉측하게 널브러져 있다.
내가 존재한다는 그 명백한 형벌 때문에,
가슴이라는 감옥과 영혼이라는 창살 사이에서
검은 날개를 파닥이는 불길한 전령이 산다.
그 까마귀의 비명이
침묵해야 할 대낮의 정적을 갈기갈기 찢어발길 때,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이 빛나는 태양 아래 내가 서 있을 곳은
그 어디에도 설계되지 않았음을.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허공에 그은 붉은 궤적을 따라
나의 낮은 그렇게 난도질당한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성(城)의 계단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