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님에게서 느껴지는 동질감
TV 속 한 채널에서 돌고래들이 무자비하게 사냥되고 학살되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돌고래의 지능은 매우 높고 인간처럼 한 사회를 이루어 그들끼리의 유대 관계를 형성한다고 한다. 이런 배경지식을 두고 보니 감정이입이 되고 돌고래가 너무 불쌍해 눈물샘이 터졌다. 옆에서 같이 다큐를 보던 엄마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얼씨구? 돌고래가 죽는데 왜 네가 우냐?"
나는 수도꼭지다. 틀면 눈물이 나온다. 슬픈 영화를 볼 때의 눈물바다는 당연지사고 다큐멘터리를 보다가도 애니메이션을 보다가도 아님 책을 읽다가도 눈물을 곧잘 흘린다. 이런 내가 요즘 눈물이 더 많아졌다. 딱히 슬픈 장면이 아닌데도 어느 포인트에서 내 상황과 그림이 겹쳐지며 감정이 북받쳐 올라올 때가 있다. 최애 프로그램 중 하나인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소녀시대가 출연했었다. 소녀시대는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낸 가수로 그 시절을 회상하게 만드는 고등학교 친구 같은 느낌을 가진 그룹이다. 유퀴즈에서 유재석은 각 멤버에게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중 태연의 답은 이랬다.
"그때 고음을 굉장히 많이 맡아서 노래했단 말이에요. 그러다보니까 뭐 실수한 적도 있었고 뭐 고음파트에서 삐끗한 적도 있었고. 근데 그게 마치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그 당시에는. 나 때문에 무대가 어떻게 되는 거 아닌가. 근데 지금까지도 제가 노래를 하고 있잖아요. 앞으로 노래할 날은 많고 앞으로 살아갈 날도 많으니까 괜찮아 태연아, 다음 무대 때 또 기회가 있어. 더 잘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나와는 처한 환경과 상황이 다르다. 사람도 다르다. 하지만 나의 상황을 대입시켜 가만히 생각해보면 태연의 감정을 느끼고 공감할 수 있다. 어떤 마음이었는지 '지금의 나'가 '그때의 나'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 태연이 했던 말은 나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꼭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괜찮아 태연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리 심각한 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태연의 표정에 난 왜 그리도 눈물이 났을까.
'괜찮아, 아직 기회가 그리고 시간들이 있어. 아직 살아갈 날이 많잖아.'
눈물바람이 월례 행사라도 되듯 툭하면 눈이 젖기 일쑤지만 좋은 점이 전무한 건 아니다. 현상의 이면이 보이는 것 같았다. 부모님의 그늘진 감정들이 보였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많은 할머님들이 속도는 못내시면서 팔만 왜 그렇게 앞뒤로 흔드시는지, 동네 할머님들께서 목적지 없이 왜 그리도 왔다갔다 하시는지 알 거 같았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했나. 나는 성숙해지고 있을까. 성숙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옹졸하여 세상을 내 중심으로 놓고 바라보던 시절에 비하면 손가락 한마디 정도는 자라지 않았을까 싶다. 아프지 않았다면 느끼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을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또는 그 사람의 굴곡이 언뜻 보인다. 걸어온 발자취나 인생까지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조금만 힘을 들이면 상대방을 향한 무차별적 힐난을 피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 조금은 큰 거 아닐까.
아픈 허리를 이끌고 나갔다가 돌아오던 길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파란 불이 금세 빨간 불로 바뀔 것 같았다. 마음은 조급해졌지만 급한 마음만큼 다리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주지 않았다. 급한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신체는 상체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팔만 열심히 앞뒤로 휘저었다. 옆에서 내 모습을 보던 엄마가 폭소했다.
"할머니네 할머니야. 할머니들이 급하면 팔만 막 흔들잖아."
아...! 그렇게 알게 되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할머님들이 팔만 앞뒤로 휘적휘적 휘젓는 이유를.
아파보아야 약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