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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각두두 Mar 11. 2024

벽은 누가 만들었을까?

벽은 처음부터 없었어.

한 학년 진급을 하거나 새로운 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들에게 읽어줬던 그림책이 있다. 브리타 테켄트럽의 <빨간 벽>이다. 표지 그림부터 벽이 견고하게 층층이 쌓여 있다. 그것도 강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빨간 벽돌이다. 그 위에 작은 생쥐 한 마리가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다.


빨간 벽들로 둘러싼 마을에 사는 다양한 동물들이 살고 있는데, 생쥐만이 이 벽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을 갖고 묻는다. 하지만 동물들의 대답은 '벽 너머엔 아무것도 없어.', 혹은 '아주 무서운 곳이야. 생각도 하지 마.', '그냥 원래부터 거기 있었어.' 등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벽 너머에서 날아온 파랑새 한 마리를 통해 생쥐는 벽 너머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상상도 못 했던 아름다운 세상으로 날아가던 생쥐가 다시 벽이 있던 곳을 뒤돌아 보는데, 생쥐가 묻는다. "벽이 어디 갔지?"  파랑새가 대답한다. "벽은 처음부터 없었어."


꼬마 생쥐야,
네 인생에는 수많은 벽이 있을 거야.
어떤 벽은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지만
대부분은 네 스스로 만들게 돼.

지난 주말 이번 겨울시즌 마지막 스키를 타러 다녀왔다. 달리기는 자신 있지만, 스키나 썰매같이 내 몸의 일부가 지면에 닿아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스포츠는 나를 겁쟁이로 만든다. 20대 때도 겉멋에 들어 보드를 시작했으나, 겁이란 겁은 다 집어먹는 바람에 엉덩방아를 숱하게 찧고 '나와 맞지 않는 스포츠'로 분류했었다. 그러다 두 아이와 가족 스포츠로서 스키를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역시 아이들은 더 빨리 배웠고, 넘어져도 잘 일어났다. 다음날 근육통도 없었고, 체력 저하의 현상도 없었다.


문제는 안전지향주의인 아빠와 엄마가 아이들을 '초급' 딱지를 붙인 벽에 가뒀다는 것이다. 초급이니까 초급 슬로프만 타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시즌이 끝나갈 때가 되서야 학창 시절 정석 책에서 맨 앞에 집합 부분만 너덜너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중급 슬로프를 좀 타게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날다람쥐처럼 보드며 스키를 날라 다니는 남편을 믿고 스키를 시작했는데, 본인 가족에게는 안전의 벽을 더 견고하고 높게 쌓아놨다. 사실은 나보다 세 배는 더 안전지향주의인 사람이다. '아직 안 돼. 거긴 경사가 심해. 길이 좁아. 사람들이 많아. 좀 불안해.' 걱정과 불안이 벽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놨다.


그러다 이번 시즌 함께 초보부터 시작한 조카가 중급 코스로 올라갔다. 9살 둘째가 오빠를 따라 자기도 가고 싶다고 했다. 조카가 우리 아이에겐 파랑 새였나 보다. 남편이 둘째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더니 중급 슬로프로 가는 리프트를 탔다. 한 번 타고나니 여러 번을 탔다. 다음날은 더  중급 코스를 여러 번 탔다. 아이는 할 수 있었다. 리프트에서 남편이 아이에게 안 무서웠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조금 무서웠는데 마음속으로 '너는 할 수 있어! 이만큼 잘 내려왔으니까 조금만 더 가면 돼!'라고 말했더니 괜찮았어."라고 대답했단다. 그 말을 들은 남편과, 그 이후에 전해 들은 나도 이 아이의 단단함에 매우 놀랐다.


아이의 용기에 나도 용기를 냈다. 중급 코스에 올라가니 전망 자체가 달랐다. 초급 슬로프에서는 바로 저 앞에 내려가는 베이스가 보였는데, 중급 슬로프만 올라가도 스키장 너머 빼곡히 이어진 산들이 파도처럼 넘실댔다. 이렇게 보이는 것이 다르고 느끼는 바람이 다른 것을 나는 두 달 동안 아래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는 핑계로 나의 용기 없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해 봤자 안 돼.", "위험할 텐데", "네가 할 수 있을까?",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돼." 다른 이들이 만들어 놓은 벽도 있지만, 대부분은 나 스스로를 믿지 않고 타인의 말에 흔들리는 나로부터 벽이 만들어진다. 그 벽들이 너무 많아서 어쩌면 이미 그 벽이 나 자신의 한계라고 단정 지어버렸을지도. 더군다나 부모로서 내 아이들에게 그 벽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내가 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것. 내가 만든 벽에 소심한 반항을 해 보는 것. 벽을 부술 수 없다면 좀 넘어가 보는 것. 파랑새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아주 작은 용기를 내보는 것. 그리고 아이들에겐 내가 벽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지 되돌아보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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