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가 다니고 있는 작은학교에는 일주일에 하루, 학부모가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아리가 있다. 9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전통 있는 학부모 재능기부 모임이다. 학교 동아리 중 유일하게 신입회원에게 학교장 명의의 임명장을 주는 곳이다. 뿌듯하게도 나는 올해로 2년째 대표를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1학기 동안엔 새로 자리를 맡은 사람의 매너로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았다. 첫 워크숍에서도 자기소개와 동아리 활동 비전을 정하기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한 것이 전부다. 이미지카드를 활용해 이 모임의 활동 목적, 존재 이유, 지향점 등을 생각해 보고 그것을 정리한 것이 활동 비전이 되었다. 그것을 공표했다. 그리고 교실에 들어가 책을 읽어주고 난 후 그냥 가려는 발걸음을 붙잡고, 회원들끼리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이야기들을 간략히 정리해 한 장 짜리 리뷰를 만들었고 전체 학부모와 공유했다. 그것만으로도 회원들은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2학기 들어서부터 어디서 에너지가 생겼는지 그림책 스터디와 창작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어주려면 우리 스스로가 좋은 책을 공부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김주희, 서정숙 공저의 <그림책에서 배웠어>를 교과서처럼 뜯어보고 작가의 다른 책들을 함께 보며 '보는 눈'을 키웠다. 총 8회를 진행했는데 참석하는 인원은 들쭉날쭉이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이 읽어주니 정말 좋더라.', '힐링하러 왔었다.' 등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열정과 패기 하나로 나만의 그림책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3개월 만에 7명의 회원이 각자의 그림책을 POD 제작으로 출간했다. 겨울방학 전 전교생을 모아 놓고 작가와의 만남 북토크까지 진행했다. 각자의 길을 함께 걸은 이 7명은 올해도 이 동아리를 이끌어가는 주축이 되었고, 누구보다 더 열정적으로 활동에 임하고 있다.
좋은 에너지가 넘치는 이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즐거워, 스스로 동아리 대표 연임을 택했다. 다행히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지난해에 만든 활동 비전을 이어가면서, 회원의 역할에 대한 지향점을 고민했다. 아이들을 위해 좋은 책을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넘어, 우리 모두 서로에게 배우고 성장하는 주체자가 되길 바랐다. "낭독자를 넘어 창작자로의 성장"을 지향하는 동아리로 진화하는 것이다.
책을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은 책을 쓰려고 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아웃풋을 고려한 사람의 인풋은 양과 질적인 측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확실히 지난해에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에 임했던 회원들은 그림책 스터디 참석율이나 집중도가 남달랐다. 많이 보고 배우니 좋은 책을 선별하는 능력도 커졌고 아이들에게도 더 좋은 책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 해낸 성취감 덕분에 한 해를 보람차게 마무리지었다고 할 정도였다.
좋은 낭독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창작자로 성장하기 위해서 좋은 낭독자가 되자'로 관점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야 회원 모두에게 이 봉사활동이 성장과정이 되고 '남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너무 거창해서도 안 된다. 후에 실토하겠지만 거창한 목표는 신규 회원의 유입을 망설이게 하고 기존 회원의 이탈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것이 대표인 나로서는 너무 큰 압박이고 부담이었다. 오죽하면 올해 활동을 시작하기 전 워크숍 때 올해 계획을 얘기하면서 얼마나 긴장했는지 모른다. '어려운 거 아니에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요.',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등 회원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걱정했던 나의 마음이 반복해서 말로 나왔다. 다행히 연륜 있는 부대표님의 응원과 그림책 창작을 함께 했던 7인의 전폭적인 지지로 일단 계획대로 해 보기로 했다.
어떤 모임이든 지속가능한 배움과 성장이 있을 때 더 진화하여 유지될 수 있다. 그 수단과 방법은 특별할 것이 없더라도 활동 비전과 가치관이 있는 모임이라면 분명 오늘보다는 더 성장하는 내일이 될 것이다. 그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정말 행복하다. 학부모 모임을 뭘 그렇게까지 열심히 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저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그렇다. 아이들을 위해 모였지만 내가 성장하는, 그래서 더 좋은 에너지를 공유하고 진화하는 모임이다. 그런 동아리로 계속 유지해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