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수가 적으니 학부모수도 적다. 그중 학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부모는 더 적다. 학교 행사든 참여 수업이든 학부모회든 언제나 만나는 사람만 만난다. 학부모회 임원이면서 학부모 동아리 두세 개 걸쳐있는 사람도 여럿이다. 물론 나도 그중 한 명이다.
학부모 동아리도 취미나 사교적인 목적이 강하다면 회원이 몇 명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책모임은 정기적으로 배정받은 임무를 수행하는 의무감이 있기에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는 일정 수의 회원이 필요하다. 12명. 한 학년에 한 학급, 총 6 학급에 들어가야 한다. 매주 하면 힘드니까 격주 정도로 나누어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12명 회원수가 유지되어야 한다. '고작 12명' 하겠지만 과밀학교 70 학급, 2천 명 학생들이 있는 큰 학교에서도 책 읽어주는 봉사활동을 자원하는 학부모는 열명도 모집하기 어렵다고 한다. 60 가정밖에 안 되는 이곳에서 12명 학부모 모으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회원은 총 14명이었다. 사서 선생님이 12명이 넘으면 일정 배정하고 회원관리하는 것도 힘드니 12명으로 줄이라는 조언을 하실 정도였다. 그러면 나는 웃으면서 스스로 하겠다고 들어오신 분들을 어떻게 내보내냐며 약간은 거만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같다. 약 2년 반 동안의 코로나 공백기를 거쳐 그 이전에 활동했던 기존 멤버가 5명 정도 되었고, 내가 가입하면서 이 좋은 동아리를 왜 안 하냐며 같이 가입시킨 사람이 4명 정도 있었고, 자발적으로 신규 가입한 사람이 2명 정도였으며, 입학, 전학생의 학부모로서 신규 가입한 사람이 3명이었다. 그렇게 더 이상은 가입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인기 있는 동아리라고 뽐내는 대표일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 활동 지속여부를 묻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기존 멤버 7명 중 6명은 여러 이유로 동아리 활동을 그만두었다. 기존 멤버들은 자녀가 이제 고학년이라는 이유로(자녀가 고학년이 되면 다른 학부모 활동도 모두 참여가 저조하다), 혹은 갑작스럽게 생긴 피치 못할 개인 사정으로, 취업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말이다. 분명히 이해 가능한 이유들이었으나, 나는 나의 과한 활동 드라이브로 인해 떠나는 것이 아닌지 돌이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를 할 때 기존 멤버는 모두 참여하지 않았다. 나를 동아리 대표 자리에 앉힌 거나 다름없는 부대표님도 '그렇게 큰 프로젝트를 하면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서 학교를 못 나올 수도 있다.'며 만류했다. 내게 대표 자리를 물려준 전 대표님도 '각자 하나 만드는 거 말고 각자의 능력을 모아서 하나의 문집을 만드는 것은 어떠냐.'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을 만들어야 자신에게 남는다.'라고 취지를 말했고, '회원 중 절반 이상이 참여의사를 밝히면 진행하겠다.'는 조건을 내밀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나를 포함한 신규 회원 7명이 진행했고 결국 멋지게 해냈다. 기존 멤버 중 누군가는 이것이 세대차이인 것 같다고 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고 했다.
회원모집을 하기 위한 나의 고민이 시작됐다. 12명 정원을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해도 5명을 신규 회원으로 채워야 하는데 입학생이 10명도 안 되는 현실에 나의 부담감은 더 커졌다. 오죽하면 개학하기 전부터 신규회원 모집 홍보를 하는 학부모총회날까지 지독한 소화 장애에 시달렸다. 내 고민의 주제는 내가 이끌고자 하는 동아리자녀가의 방향성을 신규 회원 모집 홍보물에 모두 담을 것이냐 말 것이냐였다. 지난해에 그랬듯 '낭독자'로서의 역할만 하면 된다로 가볍게 접근할 것이냐, 낭독자를 넘어 창작자로 성장할 과정을 제시할 것이냐다.
욕심을 냈다. 자기 자녀가 있는 반에 들어가 책 읽어주는 학부모로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스스로 성장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면 하는 욕심을 드러냈다. 홍보지가 조금 거창해졌다.
다행히 신규 회원 5명이 채워졌다. 과연 내 욕심과 바람대로 기꺼이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였을까? 동기부여를 하고자 한 거창한 홍보지에 마음을 뺏겨 자발적으로 신청서를 작성했을까? 아니다. 회원이 모이지 않을까 걱정했던 나의 힘 빠진 목소리를 듣고, 다른 회원들이 움직여줬다. 마침 둘째가 신입생이었던 회원이 1학년 학부모 단체톡방에 별도로 홍보를 했다. 욕심 빼고 담백하게. 2학년과 3학년에 각 한 명씩 전학생이 있어 그 학년의 회원이 끌어당겼다. 거창한 성장 동기부여 빼고 전학한 자녀의 학교 적응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모두가 모인 첫 워크숍에서 내가 더욱 조심스러웠던 이유다.
기존 회원인 선배 학부모들이 좀 더 함께 했다면 신규 회원들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적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부분은 여전히 아쉽다. 새로운 대표의 급진적인 시도가 그들에게 부담이 되었다면 그것도 그런대로 미안해졌다. 하지만 어느 조직이든 세대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존의 문화를 이어가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변화로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지금의 방향성을 함께 공감해 주고 의지를 불태워주는 회원들이 있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 각자가 조금 더 뿌듯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공유함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 나이로 따지는 세대교체가 아니다.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사람들의 세대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