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두두 May 03. 2024

벽 구멍에 아기새가 산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뚜껑만 알고 있는 비밀

만 3년 전 전원주택으로 이사 왔다. 서울에서 차로 30분이면 닿는 근교이지만,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집 뒤로는 야트막한 소나무 산이 있고, 앞으로는 앞집 뜰과 넓은 밭, 더 멀리는 강 너머 산이 보인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도시'와 '촌락' 중에서 우리 마을을 당연하게 '촌락'으로 구분했다. 


하루 중 어느 시간대인지와 상관없이 새소리가 들린다. 까치는 어쩌다 한 두 마리 오전 시간대에 마당에 들른다. 텃밭에 뭐 떨어진 거 있나 입을 오물조물 거린다. '손님이 오려나~'라는 말을 한마디 던져주면 그새 날아가버린다. 까마귀는 오후 해지기 전에 두세 마리가 소나무 위에 앉는다.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있다가 까악~ 하고 날아오르면 닭들이 놀라 얼른 숨어 버린다.  


까치와 까마귀보다 더 흔하게 볼 수 있는 건 참새와 물까치다. 참새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온다. 신기하게도 사람처럼 삼시 세끼를 찾아먹는 모양이다. 닭 사료를 얻어먹으러 단체로 방문하곤 했는데, 닭장 보수를 하면서 들어갈 구멍이 작아지자 방문이 줄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지 밥때가 되면 일단 들러본다. 


물까치는 집 앞 관상용 소나무 가지 위, 혹은 전깃줄 위 자리를 좋아한다. 머리와 윗목은 검은색이고, 턱과 몸통은 하얀색, 날개는 회색과 푸른색, 꽁지깃인 하늘색부터 짙은 푸른색까지 그러데이션이 멋들어지게 뻗어있다. 이사 오고 나서 처음 봤는데, 너무 예뻐서 볼 때마다 감탄을 한다. 


초봄에는 딱따구리도 만날 수 있다. 봄이 오려나 싶은 날씨에 마당에 서 있으면,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최대한 소리의 방향에 집중하고,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카메라 10배 줌을 하면 아주 작은 딱따구리를 발견할 수 있다.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놀랐다. 까무잡잡하고 작은 몸을 가진 새가 연신 부리로 나무를 쪼아댄다.


지금 이 시간에는 적어도 3종 이상의 새소리가 들린다. 참새와 물까치, 그리고 제비. 제비는 3년째 우리 집 모처에 둥지를 틀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두 곳이다. 


한 곳은 거실 바깥쪽 빗물받이 관 속이다. 현관을 열고 닫으면 놀란 어미새가 빗물받이 관에서 나와 훌쩍 날아오르는 걸 몇 번이나 봤다. 내가 지은 집이 아니니 그 안에 구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세로로 서 있는 빗물받이 안에 둥지를 틀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비가 오면 쓸려내려가지 않을지 매번 걱정이 된다. 희한하게도 때가 될 때까지 요긴하게 쓰나 보더라. 


다른 한 곳은 바로 2층 아이들 방 벽이다. 벽걸이 에어컨 배관 구멍. 이 구멍이 텅 비어있다는 사실을 이사하고서 한 달 후쯤 알았다. 이 구멍은 꽤 높은 위치에 있어서 그 속이 보이진 않았지만, 전에 살던 사람이 이사 나가면서 메꾸미든 폼이든 막아 놓았겠지 했다. 그런데 침대 위치를 바꾸면서 침대를 밟고 서서 보니, 세상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외기의 차가움을 느끼지는 못 했지만 방 안과 바깥이 상시 열려 있었던 것이다. 일단 급한 대로 구멍 사이즈와 딱 맞는 작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뚜껑을 테이프로 붙여 놨다. 이후 마개를 사다 깔끔하게 해야지 했는데 그새 까먹고 봄을 맞았다.


4월 초 무렵이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는데, 집 마당에서는 들을 수 없는 아기새 소리가 들렸다.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내가 딸아이 이름을 부르면 아기새가 대답했다. "새가 있나 봐!" 하고 소리의 방향에 집중하니, 놀랍게도 그 하겐다즈 뚜껑 안이었다. 미처 막지 못한 에어컨 배관 구멍.


신기하고 궁금하지만 열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두었다. 딸기맛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뚜껑을 바라보며, 제비가 둥지를 틀었나 보다며 아침마다 아기새의 소리를 들었다. 아기새가 놀랄까 싶어, 아이들 이름도 조용히 부르고 안마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몸으로 깨웠다. 생명의 신비에 감탄하며 아침을 함께 맞이한 지 한 두 달 정도 지나면, 더 이상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 다 커서 날아갔나 보다라고 안심을 했다. 


이제 깔끔하게 마개로 막든, 메꾸미로 메꾸든, 폼으로 채우든 해야 하는데, 매년 잊어버렸다. 이사 와서 세 번째 봄을 맞이했지만, 아이들 방에서 새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 뚜껑을 마주한다. '아, 아직도 저대로 놔뒀네.' 이번에 자리 잡은 제비들이 떠나면 꼭 마개를 꽂아 놔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떠나면 나는 또 저 하겐다즈 뚜껑의 존재를 잊을 것이 뻔하다. 


잊지 않고 조치를 취하게 된다면, 반드시 그 공간은 남겨 줘야지. 제비 가족이 남겨둔 둥지의 흔적을 해치지 말아야지. 내년에 왔을 때 으레 내 집이려니 하고 느낄 수 있도록 벽 안쪽으로만 마개로 막아야겠다. 우리 옆에 와서 생명의 기쁨을 나눈 제비 가족들이 참 고맙다. 지금도 집 앞 소나무 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물까치들이 반갑다. 오늘도 지나치지 않고 들러서 안부 인사 전하는 참새들을 위해 닭사료 한 그릇 퍼줘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5월엔 아카시아꽃 튀김이 제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