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뚜껑만 알고 있는 비밀
물까치는 집 앞 관상용 소나무 가지 위, 혹은 전깃줄 위 자리를 좋아한다. 머리와 윗목은 검은색이고, 턱과 몸통은 하얀색, 날개는 회색과 푸른색, 꽁지깃인 하늘색부터 짙은 푸른색까지 그러데이션이 멋들어지게 뻗어있다. 이사 오고 나서 처음 봤는데, 너무 예뻐서 볼 때마다 감탄을 한다.
초봄에는 딱따구리도 만날 수 있다. 봄이 오려나 싶은 날씨에 마당에 서 있으면,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최대한 소리의 방향에 집중하고, 조용히 휴대폰을 들어 카메라 10배 줌을 하면 아주 작은 딱따구리를 발견할 수 있다. 생각보다 너무 작아서 놀랐다. 까무잡잡하고 작은 몸을 가진 새가 연신 부리로 나무를 쪼아댄다.
지금 이 시간에는 적어도 3종 이상의 새소리가 들린다. 참새와 물까치, 그리고 제비. 제비는 3년째 우리 집 모처에 둥지를 틀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두 곳이다.
한 곳은 거실 바깥쪽 빗물받이 관 속이다. 현관을 열고 닫으면 놀란 어미새가 빗물받이 관에서 나와 훌쩍 날아오르는 걸 몇 번이나 봤다. 내가 지은 집이 아니니 그 안에 구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세로로 서 있는 빗물받이 안에 둥지를 틀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비가 오면 쓸려내려가지 않을지 매번 걱정이 된다. 희한하게도 때가 될 때까지 요긴하게 쓰나 보더라.
다른 한 곳은 바로 2층 아이들 방 벽이다. 벽걸이 에어컨 배관 구멍. 이 구멍이 텅 비어있다는 사실을 이사하고서 한 달 후쯤 알았다. 이 구멍은 꽤 높은 위치에 있어서 그 속이 보이진 않았지만, 전에 살던 사람이 이사 나가면서 메꾸미든 폼이든 막아 놓았겠지 했다. 그런데 침대 위치를 바꾸면서 침대를 밟고 서서 보니, 세상에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외기의 차가움을 느끼지는 못 했지만 방 안과 바깥이 상시 열려 있었던 것이다. 일단 급한 대로 구멍 사이즈와 딱 맞는 작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뚜껑을 테이프로 붙여 놨다. 이후 마개를 사다 깔끔하게 해야지 했는데 그새 까먹고 봄을 맞았다.
4월 초 무렵이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깨우는데, 집 마당에서는 들을 수 없는 아기새 소리가 들렸다. 너무나도 가까운 곳에서 들렸다. 내가 딸아이 이름을 부르면 아기새가 대답했다. "새가 있나 봐!" 하고 소리의 방향에 집중하니, 놀랍게도 그 하겐다즈 뚜껑 안이었다. 미처 막지 못한 에어컨 배관 구멍.
신기하고 궁금하지만 열어보지도 않고 그대로 두었다. 딸기맛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뚜껑을 바라보며, 제비가 둥지를 틀었나 보다며 아침마다 아기새의 소리를 들었다. 아기새가 놀랄까 싶어, 아이들 이름도 조용히 부르고 안마 서비스까지 제공하며 몸으로 깨웠다. 생명의 신비에 감탄하며 아침을 함께 맞이한 지 한 두 달 정도 지나면, 더 이상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 다 커서 날아갔나 보다라고 안심을 했다.
이제 깔끔하게 마개로 막든, 메꾸미로 메꾸든, 폼으로 채우든 해야 하는데, 매년 잊어버렸다. 이사 와서 세 번째 봄을 맞이했지만, 아이들 방에서 새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 뚜껑을 마주한다. '아, 아직도 저대로 놔뒀네.' 이번에 자리 잡은 제비들이 떠나면 꼭 마개를 꽂아 놔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떠나면 나는 또 저 하겐다즈 뚜껑의 존재를 잊을 것이 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