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30대인 나와 40대 초반인 남편은 젊어서 해 보기로 했다. 서울 동쪽에서 차로 30분이면 닿는 곳이지만, 상수원 보호 개발제한구역이라 자장면집 하나 없는 시골로 이사 온 지 일 년이 되었다. 남편은 왕복 3시간이나 되는 출퇴근 거리를 기꺼이 하겠다 했고, 나는 일 욕심을 버리겠다 했고, 아이들은 전원주택에서 사는 게 좋겠다 했다. 그렇게 전원생활이 시작됐다.
그리고 닭과의 인연도 시작됐다.
청계라고 하는 거무틔틔한 닭들을 처음 보았다. 동네 첫째 아이와 같은 반 친구네가 살아 인사차 들렀는데 간간이 들려오던 닭 울음소리의 진원지를 알게 되었다. 호화스럽게도 비닐하우스 하나를 떡 차지하고 그 안에 또 튼튼한 닭장 속에서 15마리나 자라고 있었다.
전원생활하려면 닭 좀 키워야지? 내가 알 줄 테니까 부화기 조그마한 거 하나 사 봐~
알에서 병아리가 태어나는 그 순간을 보면 아이들이 정말 신기해한다고 했다. 병아리 키워서 닭이 되고 암탉이 알을 낳고 또 포란을 해서 병아리를 낳고. 다 그것들이 자연에서의 산교육이라고 했다.
병아리를 주는 게 아니라 알을 준다고? 부화기를 사서 부화를 시키라고? 허허허. 어릴 적 학교 문 앞에서 한 마리에 500원 주고 샀던 기억이 있다. 병아리를 준다면 어떻게 키워볼까 싶긴 하겠지만 알을 준다니 손사래치고는 인사하고 나왔다.
그런데 며칠 동안 머릿속에 생각이 머물다 입 밖으로 나와 버렸다.
언제까지 전원생활할지도 모르는데, 할 수 있는 거 다 해 봐야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왜 꼭 닭이어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갓 이사를 온 초보 촌뜨기는 왠지 닭을 키워야만 할 것 같았다. 아이들도 병아리 키우기는 좋아할 것 같고, 별로 귀찮을 일은 없을 것 같고, 건강한 닭이 건강한 알을 낳으면 그것을 먹고 우리도 건강할 것 같고. 이것이야말로 전원생활이지. 암.
그래서 병아리 부화기를 샀다.
전통시장에 가서 살아있는 성계(큰 닭)를 사도 암탉 3~4마리는 살 수 있을만한 돈을 주고 국산 미니 부화기를 구매했다. 첫째 친구네 집에서 청계 알을 준다고 했는데, 부화기가 배송되면서 토종닭의 알이 3개가 같이 왔다. 왠지 또 정감 있는 달걀색이라 얼른 넣고 부화 설정을 맞췄다.
알아서 온도와 습도와 전란(한 시간마다 알을 굴려주는 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편리한 인공포란 시스템이다. 주인이 될 우리는 21일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무심한 듯 하지만 신기해서 매일매일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혹시나 21일 씩이나 기다렸는데 부화가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또 쳐다보게 된다.
다행히 첫 부화에서 두 마리가 태어났다. 아이들이 기대했던 노란 병아리가 아닌 갈색 병아리였다. 알을 서비스로 보내준 업체의 설명에 따르면 토종 재래닭이라고 했다. 이제는 10개월 된 성계로 자랐다. 알도 낳는다. 그 알로 계란찜을 해 주면 건강에 좋다고 둘째가 좋아라 한다.
처음 친구네서는 닭이 무서워 닭장 안에는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아이들이 많이 변했다. 정성스레 이름을 지어 불러주고, 먹을 것이 있으면 손으로 들고 먹여 주고, 닭 울음소리와 퍼덕거리는 몸짓으로 대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래 산교육이긴 하다.
새벽 5시가 되면 말도 안 되게 부지런한 수탉이 울어대는 통에 잠을 깬다. 아무리 추운 날이라도 닭들 물이 얼었을까 뜨끈한 물을 내어 부어주고 와야 한다. 매 주말마다 닭장과 관련된 소소한 관리 보수가 필요하고, 사료만 먹는 줄 알았더니 알을 낳기 위해서 필요한 단백질과 채소들도 구입해서 줘야 한다.
정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한 달에 드는 사료값과 기타 구입비를 합치면 요즘 유정란 가격으로 30알 두 판은 사 먹겠다. 물론 지금도 달걀은 사 먹는다. 병아리를 부화시킨 것이 지난해 4월이고 총 4번을 부화시켰으며 지금 키우고 있는 닭의 수는 6마리이지만 우리는 달걀을 사 먹는다. 이 수지타산 안 맞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닭은 그냥 애완동물이다. 반려닭, 반려계, 뭐 그런 거다.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