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겉보기엔 얌전하지만 쌀 두 포대도 들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의 젊은 감성을 꿈꾸던 내가,
차가운 심장으로 아기 보기를 돌같이 하던 내가,
공공기관에, 그것도 알록달록한 어린이 박물관에, 마케팅 담당으로 입사했다.
날 붙여준 건 쌀 두 포대였다.
마케팅 동아리에서의 활약이나 마케터로서의 꿈과 열정도 아니고 고작 쌀 두 포대.
중년 면접관님들의 웃음 코드를 건드려 껄껄 웃게 만든 바로 그 쌀 두 포대.
면접 초반엔 내가 지원한 직무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또 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같은 형식적인 질문들이 들어왔고, 나도 준비한 대답을 기계처럼 또박또박 읊었다.
내 대답은 토씨 하나 거스를 데 없이 매끄럽고 정석적이었으며 호흡까지 완벽했다.
예상한 질문에 예상한 답변이라니, 얼마나 지루한 연극인가.
면접관들의 동공은 장마철 먹구름보다 채도가 낮았고, 자꾸만 이상한 포인트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집중해서 듣고 있지 않은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질문, 1분 동안 스스로를 어필하시오.
그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았다.
그냥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적당히 호감을 주면서 적당히 공무원스럽고 나랑 굉장히 안 어울려서 웃음이 나올 법한 농담.
잊었던 대사가 떠오르듯 머릿속이 번득이고, 문장을 입 밖으로 밀어낼 준비를 하는 찰나의 순간, 심장이 두근거렸다.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확신으로 드립을 치기 직전, 희극인들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제가 겉보기엔 얌전하지만'에서 0.5초 만에 동공들이 나를 향해 모여드는 것을 느꼈고
'쌀 두 포대'에서 운동회 박 터지듯 와르르, 쏟아지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서라운드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의 진동을 느끼며 확신했다.
난 붙었다.
입사 첫날, 사무실 구석구석 인사를 돌고 다 같이 점심을 먹으면서까지 열 번도 넘게 같은 질문을 들어야 했다.
“쌀 두 포대도 들 수 있다고 한 게 고영쌤이에요?”
나중에 들은 말로는 면접 직후에 박물관장님이 여기저기 소문을 냈다고 한다. 덕분에 낯가리는 내향인임에도 불구하고 박물관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도 1년을 채 넘기지 못했는데, 그 이유라 함은...
일단 지루했다.
그곳에서 필요한 건 엄격하고 복잡한 문서 작성 규칙과 예산을 남기지도 초과하지도 않기 위한 노력, 그뿐이었다.
일단 공공기관이면 마케팅이든, 회계든, 인사든 모든 업무는 결국 예산에서 시작해 예산으로 끝나는 것 같다. 문서 작성 가이드를 열람하고, 누군가가 올렸던 기안을 조심스레 베끼고, 예산을 사용하고, 또 복잡한 절차를 걸쳐 지출 증빙 서류를 올리고...
되게 복잡하고 번거로운데 동시에 도통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가끔씩 중간고사, 기말고사같이 큰 시험이 닥쳐 줘야 성취감이라는 것도 생기고, 아드레날린이 샘솟기 마련인데, 그저 꼼꼼하고 성실하게 수행평가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반복적인 일상을 깨는 이벤트는 기껏해야 민원 전화 정도?
약 500번의 민원 전화로 인해 내가 얻은 소득은 유선상 매너가 몸에 배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다지 단정하게 입지도 않았지만) 치마 길이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도 싫었고,
(내가 알 바 아니지만) 다들 무난하게 입고 다니는 것도 싫었고, 이렇게 고등학생처럼 매년, 매달, 정해진 일과들을 쌓아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좀 더 아슬아슬하고 싶었다.
비록 지루하더라도 안정적이라는 큰 장점이 있었으니, 하품 몇 번 하면서 버티다 퇴직금이나 쌓고 나갈 수 있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사 9개월 차에 마지막 3개월을 차마 못 버티게 만든 큰 이유가 있었으니...
사직서가 잠들어있는 인내심의 문을 낰낰, 세 번씩이나 두드린, 뻔하디 뻔한 그 이름, 사수.
꼰대 중에 제일 무서운 게 젊은 꼰대래. 하하하.
그 사수, (이하 소년이라고 부르겠다. -년이라고 욕하고 싶은 마음 절반과 내 소중한 글에 상스러운 단어를 담고 싶지 않은 마음 절반을 절충한 중의적인 표현이다.) 소년을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뱉은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몰랐다. 꼰대는 연륜이라도 있지만 젊은 꼰대는 그냥 꼰대라서 그런 거 아냐? 정도로만 생각했다. 굳이 사서 알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알게 되었다. 젊은 꼰대가 왜 무서운지.
첫 번째 낰낰.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이 물놀이 페스티벌이 기획되었다.
엑셀을 가장 비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는가?
엑셀의 존재 이유를 무시하고 철저히 메모장으로만 쓰는 방법 말이다.
열심히 숫자를 채워 넣고 계산기를 두드린다?
아니, 그보다 더 비효율적인 방법이 있었다.
수십 장에 달하는 엑셀 파일을 프린트해 일일이 손으로 중복체크를 하는 것.
소년은 물놀이 페스티벌 지원자 정보를 엑셀에 옮겨 적게 한 뒤 모조리 뽑게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엑셀 용지에 싸인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중복 신청자를 가려냈다. 하지만 인간의 시력과 두뇌는 한계가 있었고, 실수가 생길 때마다 소년은 한숨을 쉬며 다시 프린트를 하고, 또 뽑고, 다시 뽑고...
소년은 내가 종이 위에 완벽하게 중복 체크를 할 때까지 엑셀을 뽑게 했다. (결국 못해냈다.)
마침내 시계가 11시를 가리켰을 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이랑은 일 못하겠다.
다음 날 아침, 엑셀의 ‘중복된 항목 제거’ 기능으로 10분 안에 일을 처리하는 사수를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이랑은 진짜 일 못 하겠다.
(페스티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때문에 허무하게 취소됐다.)
두 번째 낰낰.
첫 회식 때 사수에게 버림받은 신입이 되었다.
입사 후 한 달쯤 지났을까, 삼겹살집에서 평범한 회식을 한 날이었다. 잘 먹고 나와서 박물관장님을 포함해 2차를 갈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제각기 흩어졌다. 딱 기분 좋게 취기가 올라 신입 동기들과 손을 잡고 룰루랄라 정류장을 향해 가고 있는데, 일제히 핸드폰이 울렸다. 서로의 사수들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던 길을 되돌아가 2차 장소로 향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공공기관이었으니까.
문제는 2차를 파하고 박물관장님과 소년과 내가 남았을 때 일어났다. 제일 기분 좋게 취한 박물관장님은 서로의 집이 어딘지 물어봤고, 바로 코앞 아파트 단지에 살던 소년에게
“왜 안 들어가세요~? 그래야 나도 고영 선생님이랑 있지.”
뭐 이런 비슷한 농담을 했던 것 같다.
문제는 소년은 질투가 많은 사람이었고 박물관장님의 총애를 받고 싶어 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소년에게는 이 말이 술 취한 사람의 가벼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던 것 같다. 들은 체 만 체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바람처럼 앞서 나간 소년은 박물관장이 재차 부르자 기어이 에어팟으로 귀를 막고 사라져 버렸다. 만취한 박물관장님과 나. 번화가 한가운데 졸지에 둘만 남겨졌다.
대놓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박물관장님은 발그레한 얼굴로 어서 들어가 보라고 했고, 나는 만취한 박물관장님이 무사히 귀가를 하든 말든 정신없이 소년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한참을 걷자, 저 멀리 소년의 뒷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불렀다.
돌아보지 않았다.
뒤통수 앞까지 가서 불렀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았다.
이상하다, 안 들릴 리가 없는데.
귀 옆까지 다가가서 불렀다. 돌아보지 않았다.
계속 모른 척을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앞을 가로막고 불렀다.
비로소 날 보고 에어팟을 뺀 소년의 첫마디가 인상적이었다.
“왜요?”
집으로 향하는 막차에 앉아 창밖의 야경을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이랑은 진짜 일 못하겠다.
세 번째 낰낰.
공공기관이든 대기업이든 어떤 프로젝트를 위탁할 업체를 선정하려면 심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기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지만 공공기관은 공정함에 대한 책임감이 막중하기 때문에 업체 심사는 매우 조심스러우면서 민감한 업무다.
그리고 그걸 내가 주관하게 되었다.
사실 신입인 내가 주관하게 된 것은 상황일 뿐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주관하기엔 무리가 있었기에 이번 심사는 사수에게 맡기고 인수인계를 받아야 했다. 소년이 지시하는 대로 대학 교수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심사를 요청하고, 일정을 안내하고, 심사장을 세팅하고, 다과를 준비하고, 서류를 관리하고... 근데 주관은 소년 이름으로 올라가고.
업무에 내 이름이 올라가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은 조금도 없었다. 문제는 이름을 올린 사람이 책임은 조금도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단은 소년이 업체들로부터 받아야 하는 서류 한 가지를 잘못 알려준 것이었다. 서류를 처리하던 다른 담당자로부터 지적이 들어오자, 소년은 나를 그 담당자의 자리로 불렀다. 그리고 그 담당자 앞에서 ‘제가 아니라 얘가 잘못한 거예요’를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
“이렇게 하라고 하셔서 그런 건데요.”라고 반박하는 나에게 “근데 그다음에 내가 이렇게 말한 적 있지 않아요? 그게 결국 그렇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어지지 않아요?”라고 방어하는 소년을 보자, 이건 내가 져야겠다 싶었다. 꼬투리에 의미 부여를 하는 타입은 절대 말로 못 이긴다.
그 후로도 업무 주최자가 확인하지 않아서 생긴 자잘한 문제들은 온전히 업무 수행자인 나의 탓으로 돌아갔다. 심지어 심사위원 한 명이 혼자 잘못 알아듣고 착각한 일조차 내 잘못이었다. 어쨌든 우당탕탕 심사를 끝내고 심사장을 정리하는데 어디선가 소년의 목소리가 날아와 귀에 꽂혔다.
“대체 내가 어디까지 알려줘야 해?”
아, 이 XX랑은 진짜 일 못 하겠다.
이렇게 절반은 연한 하품으로 나머지 절반은 짙은 빡침으로 칠한 채, 알록달록한 어린이 박물관에서의 생활이 막을 내렸다.
일도 사람도 다 무난했던지라 특별히 기억에 남는 직장은 아니지만 정말, 아주 가끔, 소년의 현재가 궁금할 때가 있다.
그토록 원하던, 자신을 존경해 줄 수 있는 후배를 만났는지.
마침내 박물관장님의 총애를 쟁취했는지, 그때보다 조금은 더 철이 들었는지.
그것 빼고는 대체로 한가롭고 느슨한 업무들이어허어어아아암...
이 글을 쓰고 나서도 그곳을 또다시 떠올릴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