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석 #비트코인 #자유연애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다닌 5인 미만 초소형 스타트업의 세 가지 키워드를 꼽자면 치석, 비트코인 그리고 자유연애다.
나의 지인 최의 소개로 이직을 하게 된 스타트 업의 대표는 넓적한 얼굴에 부리부리한 인상을 가진, 해태를 닮은 사람이었다. 해태는 반 백발의 단발머리와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에 후줄근한 옷차림, 그리고 한겨울에는 쪼리, 한여름에는 비니를 절대 포기하지 않는 나름의 패션 철학이 있었다.
오, 과연 이것이 스타트업의 후리함인가! 저 사람은 천재이면서 '옷이란 두뇌를 감싸고 있는 육신에 걸치는 하찮은 천 쪼가리 따위'라는 생각을 가진 괴짜가 아닐까? 스티브 잡스의 검은 폴라와 청바지가 이 사람에게는 털 비니와 쪼리일지도 몰라. 그렇게 해태의 첫인상은 나름의 방식으로 스타트업에 대한 환상을 자극했다.
그러나 입사 하루 만에 환상, 아니 상식까지 산산조각이 났다. 해태는 비양치주의자였다.
삼시세끼 먹고도 이를 안 닦는 비양치주의자. 40년이 넘도록 이를 안 닦고 살았으니 그 고집을 알 만하다. 더러운 건 더러운 건데, 솔직히 역겨움보다는 호기심함에서 오는 흥미로움이 더 컸다. 내가 살면서 이 안 닦기 40년 경력자를 언제 또 구경하겠어?
들은 바를 전하자면, 이를 계속 닦지 않으면 치석이 잇몸을 따라서 또 하나의 치아처럼 덩어리진다고 한다. 치아 뒤로 치석이 두텁게 쌓이면 이쑤시개로 틈새를 쑤셔줄 때인데, 이쑤시개 끝으로 살살 밀어주면 치석 틀니가 뾱! 하고 깔끔하게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실시간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표정이 궁금하다.)
그냥 입냄새도 불쾌하고 담배냄새도 고약한데, 이를 닦지 않는 사람이 담배 피우고 난 후의 냄새는 내가 가진 언어 수준에서는 표현이 안된다. 하루는 대표가 이가 너무 아픈 나머지 점심으로 소고기 야채죽을 먹었던 날이 있었다. 그날 대표의 입냄새가 어땠냐면. 소고기 야채죽을 센 불에, 일 년 동안 끓여 살짝 부패한 갈색의 찐득찐득한 소고기 야채 잼만 남게 된다면, 그 잼에서 그런 냄새가 날 것 같았다. 그때 (원치 않게) 맡았던 소고기 야채죽 잼의 냄새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냄새를 맡자마자 눈으로 무언의 신호를 주고받은 최와 나는 카톡으로 진지하게 토론을 했다.
<해태는 키스를 해본 적이 있을까?>
결론은 만장일치로 없다,였다. 누가 저 입에 입을 맞출 수 있겠어?
해태는 수년 전, 운 좋게 비트코인의 물결을 제대로 탄 벼락부자였다.
눈을 번득이며 150억이 찍힌 가상계좌를 자랑하던 해태, 2조까지 벌어서 무법 국가를 세우겠다던 해태는 비트코인으로 재테크를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과장 없이, 해태의 휴대폰은 하루에 100번씩 큰 소리로 코인 알람을 울려 댔다. 수시로 요동치는 그래프를 들여다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미팅 중에도 알람을 절대 끄지 않았다. 코인만 보는 삶, 코인을 위한 삶, 코인이 기분을 지배하는 삶이었다. 그렇게 살아서 150억을 벌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것 같다만, 부러운 동시에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어쨌든 해태의 비양치적인 생활은 치과 치료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코인이 선물해 준 여유로운 삶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눈앞에서 벼락부자가 자랑을 해대니 나도 코인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나의 코인 투기는 최후의 결말을 맞이하며 강한 쓴맛을 안겨주었다. 시험 삼아 매수한 코인이 하루 만에 20프로의 수익률을 기록하자마자 바로 목돈을 때려 넣었는데 다음 날, ‘일론 머스크’ 다섯 글자가 온갖 뉴스 페이지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내 코인이 떡상 했다면, 아니 못해도 100만 원이라도 벌었다면 그게 내가 이 회사에서 건진 유일한 소득이었을 텐데……. 괜히 따라 했다가 몇 달 치 월급까지 순식간에 날려버렸으니 잃은 것 밖에 없는 씁쓸한 곳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해태는 자유연애주의자였다. 좀 더 주관적이고 유교적인 관점에서 표현하자면, 합의 하에 외도를 즐기는, 아내와 여자 친구를 모두 가진 사람이었다.
아내가 어느 새부터 스킨십을 원하지 않아 합의 하에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내 상식이 뿌리째 흔들리는 걸 느꼈다.
원래 이런 삶도 있는 거야, 아니면 이 사람이 제정신이 아닌 거야?
그리고 솔직히 불화의 원인은 40년 묵은 치석 때문이 아닐까, 라는 의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해태는 모든 사람 앞에서 여자 친구가 있음을 당당하게 드러냈고, 동시에 귀여운 두 자녀의 동영상을 자랑했다. 심지어 여자 친구와 나와 최까지 데리고 인스타에서 핫한 식당으로 외식을 다니기도 했으니, 불륜이나 외도보다는 자유연애주의자라는 표현에 더 가까웠다.(결국엔 같은 뜻이라고 생각하지만.)
치석, 비트코인, 그리고 자유연애에 더 이상 익숙해지기 전에 서둘러 그곳에서 도망쳤다. 해태를 보면서 나는 그냥 돈도 성실하게 벌고 연애도 성실하게 하는,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으로 살기로 다짐했다.
물론 양치도 치카포카 하루 세 번씩 성실하게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