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시선 : 분노 조절 버튼

by 고요

“갑자기 끼어들기”, “급정거”, “깜빡이 세리머니”, “야간운전 스텔스 차량”, 신호 앞 명상가“ 등..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한 번쯤은 분노를 터트렸을만한 일들이 있다. 단전부터 끓어오르는 열이 결국 뚜껑까지 올라 머리가 뜨거워진다.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싶지만 백보 천보 양보해서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저 녀석의 안부가 걱정되며 어디 편찮은 곳이 있는 것이 아닌가 많은 의문이 든다. 머리가 많이 편찮은 상태일 것이다. 아픈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의 혈압이 낮아질 것을 걱정해 끌어올려주는구나. 참 아주 사려 깊다.


최대한 이해하려 머릿속에 생각을 굴려보지만 결국 이해하지 못하고 과부하 온다. 정수리에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올라오려 하자. 그때 앞에서 노란 불빛이 깜박거린다. 큰 잘못을 했을 때 두 손을 싹싹 빌듯이 양쪽 눈을 부지런히 싹싹거린다. 그러자 머리에 오르던 열이 소화기를 뿌려놓은 것처럼 차갑게 식는다. “그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화장실이 급하다던가.” 불과 몇 초 전까지는 분노조절장애 의증을 진단받을만한 상태였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마음에 인자함이 넘쳐난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떨어지는 종잇장처럼 어떤 바람이 부냐에 따라 앞뒤가 쉽게 펄럭인다.


문득 이런 불같은 마음이 일어나는 것의 원인은 무엇이고, 어떤 것이 문제일까 고민해 본다. 일차적으로 잘못한 저 녀석이 문제는 맞다.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며 보편적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라는 게 있으니까. 이차적으로는 내가 문제이다. 내가 차 안에서 백날 화낸다고 저 녀석이 알까? 결국 그 화는 나만 태울뿐이다. 마지막으로는 우리의 마음이 모두 모나 있어 모든 것을 찌르는 것이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차에는 분노조절 버튼인 비상깜빡이가 있다. “참을 인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라고 하였던가 이 버튼은 모양도 비슷하게 삼각형이 세 개가 겹쳐 있다. 참을 인은 아니만 뾰족함을 덮고 또 덮어 날카로운 모서리를 뭉툭하게 한다. “삼각형이 세 개면 분노조절이 가능하다.” 삼각형 모서리의 날카로움이 나도 상대방도 찌르지 못하게 덮어준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일상도 운전과 같다. 나의 속도에 맞게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무개념 운전자들 같이 내 삶에 끼어드는 존재와 사건들이 있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화도 나고 짜증도 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결국 내 속만 갉아먹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에도 비상깜빡이 버튼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버튼의 삼각형의 모서리가 둥글어질 때까지 수만 번 눌러보면 더 원만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