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내가 20대였을 때.
나의 가장 선명한 꿈은 ‘작가’였다.
전공도 배경도, 내세울 만한 조건도 없었지만
그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뚜렷했다.
매번 서점에서 이달의 베스트셀러를 펼쳐 들고는
‘나도 언젠가는..’ 막연히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꿨다.
평범한 직장인이 되는 건 싫다며
학교로부터 잠시 도망친 휴학생이면서도.
그때 나는 미래의 내 모습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돈을 잘 벌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더라도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사람.
배고프더라도 사유하고 글 쓰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
데스크톱은 작가가 쓰기에
왠지 멋이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인터넷 검색,
문서작성만 소화할 수 있는 가장 값싼 노트북을 샀다.
그날부터 마치 작가라도 된 듯 노트북을 켜고
라디오의 잡음을 배경 삼아 글을 써 내려갔다.
무모하고 서툰 문장들이었지만
맘에 들지 않는 나의 현실에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위안만으로는 부족한 날이 찾아왔다.
‘진짜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을 찾아 헤매던 중 마주한 곳이 브런치였다.
다른 이들의 글을 기웃거리며 훑어보았다.
다 읽지 않아도 내 현실을 깨닫게 하기에 충분했다.
글 한 줄 한 줄이 마치 단단히 다져진 벽처럼 다가왔다.
그 앞에서 무력감이 밀려왔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글을? 역시 안 되겠지.’
결국 창을 닫았다. 브런치도, 글도.
그렇게 멀어진 줄 알았던 글은
끝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기분이 좋을 때, 마음이 흔들릴 때, 빗소리를 들을 때
나는 주섬주섬 보따리를 풀어
간직했던 문장들을 마구 쏟아냈다.
들어주는 이 없는 곳에서의 혼잣말 같은 글.
꾹꾹 눌러온 갈망이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내 글을 읽어준다면 어떨까.’
그 바람은 블로그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 나는 내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결국 쓰고 싶은 글이 아니라 읽히고 싶은 글을 썼다.
‘내가 어떤 글을 쓰든, 누군가 읽기만 하면 된다.’는
욕망이 앞섰다.
결국 처음 왜 글을 쓰고 싶었는지조차 잊었고,
방향을 잃은 채
그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잡로거로 전락해 버렸다.
‘나는 정말 글이 쓰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단지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걸까.’ 혼란스러웠다.
그 무렵, 나는 내 인생에
늘 불만족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마주했다.
무언가에 푹 빠져 노력해 본 적 없는 과거,
그저 그런 대학 진학, 꿈꾸었지만 가지지 못한 직업.
후회의 조각들이 마음 구석구석 흩어져 있었고,
낮은 곳에 깔린 우울은 늘 애써 외면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이 싫었다.
그러다 결심했다.
과거와 반대로 살아보자. 청개구리처럼.
관심을 갈구하는 글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담은 글을 쓰자.
비웃음이 두려워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자.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정말 해보자.
그 시작은 다시, 브런치였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응원해 준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돌고 돌아, 거의 열 해가 흘러서야 다시 서 있는 자리.
참 멀리도 돌아왔다.
돌아온 이 끝에서야 비로소 시작을 믿게 되었다.
이제야 나는, 글로 살아가려 한다.
10여 년 전, 작은 방의 차가운 책상 앞에서
‘작가 흉내’를 내던 나는
이제 여기에서만큼은 진짜 작가로 불릴 수 있다.
우리 아빠 휴대폰 속 내 이름은 이미 ‘최작가’다.
그 흔한 명함 한 장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던 나에게
남편은 작가의 이름으로 명함을 파주겠다며 웃는다.
닿고자 하는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뗏목을 타고서라도 언젠간 그곳에 닿게 된다는 걸
나는 이제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