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함과 함께 살아가는 법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예민함으로 불편한 순간이 적지 않았지만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따로 있었다.
“넌 너무 예민해.” 라는 말에 담긴 뉘앙스였다.
그 말은 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처럼 들리기도 했다.
마치 내가 조금은 덜 단단하고,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그래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나조차도 ‘혹시 내 머리 꼭대기에
안테나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많았으니까.
정신없이 북적이는 카페에서 누가 물을 쏟기라도 하면
나는 괜히 그쪽 상황에 마음이 쏠렸다.
앞사람의 대화보다
그 사람이 당황스러워하는 표정이 더 신경쓰였고,
수습될 때까지 나의 신경은 온통 그쪽에 머물렀다.
여러 사람과 모인 자리에서,
하필 내 옆에 있던 사람이 내내 말을 아끼다가
어렵게 꺼낸 한마디가 대화 속에 묻히면
또 마음이 쓰였다.
“안테나가 있는 게 분명하다니까.
제발 그만 좀 신경 쓰자. 피곤하다, 정말.”
그렇게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곤 했다.
나는 소리에도, 냄새에도,
심지어 작은 통증에도 민감하다.
난 분명히 불편한데,
가까운 사람들은 그걸 ‘엄살’이라 불렀고
누군가는 ‘유난’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 스스로도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이 예민한 안테나는 생각보다 더 예리했다.
사람을 만날 때도 표정의 아주 작은 변화나 말투의
미묘한 차이를 너무 잘 느껴버렸다. 그러다 보면
대화가 끝난 뒤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샤워를 하면서도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말했을까?”
상대는 별뜻 없이 던진 말일 텐데, 나는 그 안에서
온갖 의미를 끄집어내며 혼자 곱씹었다.
‘나’로 살아간다는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매번 실감했다.
이 예민함은 나에겐 마치 짐짝같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다른 면을 발견했다.
살다 보니 예민함 덕분에 얻은 것도 있었다.
누군가 평소와 달라 보이면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안부를 묻거나, 새로운 변화를 발견하면 누구보다
먼저 칭찬할 수 있었다.
그 작은 말 한마디는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다.
상대의 얼굴이 밝아지는걸 보면서,
나의 예민함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 예민한 덕분에
일상의 아주 사소한 순간들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매일 달라지는 아침 공기의 냄새를 느낄 수 있다는건 내게 큰 행복이였다.
이런 미묘한 변화에 귀 기울이는 순간,
삶이 조금 더 풍요로워졌다.
남들보다 조심성이 많아 큰 사고나 다친 적이
거의 없었던 것도 예민함 덕분이었다.
불안이 만들어낸 생존 본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 머리 꼭대기의 안테나는
때로는 불필요한 잡음까지 끌어들여
나를 지치게 했지만,
때로는 남들이 알아채지 못한 신호를
먼저 포착하게 해주었다.
나는 이 안테나와 함께 오래 살아오며,
덜 힘들고 조금 더 단단해지기 위해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 배워왔다.
예민한 마음이 폭주할 때는 종종 글로 적어낸다.
감정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기 전에
밖으로 꺼내놓는 것이다. 그러면 금새 진정이 된다.
종이에 쏟아낸 문장들은
마치 내 얘기를 들어주는 또 다른 ‘나’ 같았다.
누군가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민할 때 떠오르는 감정을
‘나 전체’로 치부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원래 예민한 사람이야.”라고 단정하기보다
“오늘 아침 그 일 때문에 조금 서운하네.”라고 말하는 식이다. 감정은 나라는 사람을 규정짓는 게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한 조각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또 하나 배운 건,
“내가 이래서 그 사람이 그런 표정을 지었나?”
내 감정으로 타인의 의도를 단정짓지 않는 것이다.
사실 이건 그 사람을 위한 것 같지만,
결국 나를 위한 방법이기도 했다.
괜히 상대 마음을 짐작하다보면
없는 잘못까지 내 몫으로 떠안게 되고,
끝내 상처받는건 나 자신이었다.
몸의 긴장도 예민함을 키운다.
어느 날엔 내가 불안할 때
어깨가 무의식적으로 올라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로는 틈틈이 어깨를 툭 내려놓고, 턱을 살짝 들고,
먼 산을 바라보곤 했다. 그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신기할 만큼 마음이 가벼워졌다.
생각이 너무 복잡할 땐 오히려 단순한 일에 몰두했다. 설거지를 하거나 바닥을 닦다 보면 머릿속이 조금씩 정리됐다. 손이 바쁘면 마음은 자연스레 쉬어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말하는 방식을 바꿨다.
나 자신에게 “왜 이렇게 눈치 보면서 살아?”라고
다그치는 대신
“나는 참 눈치가 빠르긴 하다.” 픽 웃으며 말해줬다.
예민함의 일부 면면들을 마치 그게 내 성격인 것처럼
낙인찍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나는 여전히 예민한 사람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이 성격은 평생 나와 함께할 것이다.
예전엔 그 사실이 불편하고 싫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돌이켜보면 이 예민함이 나를 지켜주기도 했고,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주기도 했다는 생각.
예민함은 결코 약점만은 아니다.
저마다의 고유한 감각이며,
때로는 삶을 더 빛나게 해주는 힘이기도 하다.
나와 같은 누군가가 있다면,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과
조금 더 잘 지낼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