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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zetto Nov 09. 2024

전,란 단상

부산. Netflix. 전,란.

* 다른 텍스트의 한 줄 평들이 궁금하시다면 왓챠피디아(Gozetto)나 키노라이츠(Gozetto1014)를 보시면 됩니다.


현재를 덧입힌 과거가 난잡하게 얼키고 설킨다(2.0)


불협화음으로 보는 내내 불편했던 영화이다. <전,란>의 이야기는 신분이 서로 다른 두 남자의 갈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누던 '천영(강동원 분)'과 '종려(박정민 분)'가 임진왜란이라는 거대한 전쟁 속에서 켜켜이 쌓이는 오해로 서로를 죽이고자 하는 원수가 되는 이야기. 두 남자의 우정과 복수를 그린 이야기라는 것인데 <전,란>의 대본을 박찬욱 감독이 썼다는 말에 그저 그런 우정과 복수를 그린 이야기로 여겨지지 않는다. 검을 나누며 수련하는 장면은 서로에 대해서 잘 아는 천영과 종려가 나누는 사랑의 속삭임 같다. 가족에게 저주를 퍼부은 천영의 손에 검을 꽂으며 침음을 삼키는 종려의 모습은 가족을 욕한 것에 분노하기 보다 천영의 억울함을 알고 있으나 그걸 풀어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분노하는 것 같다. 저주처럼 가족을 몰살했다는 오해로 천영을 죽이려는 종려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의병 동지들을 무참히 죽인 조정에 분노한 천영이 서로에게 칼을 겨눌 때는 잠시 칼을 내려놓고 서로 대화 좀 하자며 숨을 죽이게 된다. 이처럼 <전,란>의 천영과 종려의 모습은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 퀴어한 브로맨스 관계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보는 것을 감독이 의도한 것일까, 각본가 박찬욱이 의도한 것일까, 아니면 박찬욱의 이름이 씌인 관객이 의도한 것일가?


이렇게 보여짐의 의도에서부터 불협화음이 느껴지는 <전,란>은 서사구조에서도 불협화음이 느껴진다. <전,란>의 서사구조에서 '선조(차승원 분)'는 천영과 종려에 반하는 직접적인 빌런이 아니라 둘 사이에서 영향을 주는 간접적인 빌런에 해당한다. 즉, <전,란>은 표면상 선조를 악마화하는 과정에서 천영과 종려가 휩쓸려 오해가 쌓이는 방식의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란>의 서사구조에서 선조는 간접적인 빌런임에도 천영과 종려의 갈등을 추동하는 가장 중요한 장애물 역할을 한다. 천영과 종려의 브로맨스가 신분제에 의해 파국에 이르는 관계인데 선조를 악마화하는 과정의 근간에는 신분제에 기반한 왕권이 있기 때문이다. 궁(宮)에 대한 해석에서 알 수 있듯 <전,란>에서 선조는 사회 시스템인 신분제의 확립으로 왕권이 성립된다고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러한 선조의 왕권 인식과 집착은 조선 최초 서자 출신 왕이라는 그의 출신을 고려하면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나 <전,란>에서 정여립과 대동계를 잔인하게 진압하는 모습, 몽진 중 자신을 공격한 백성들을 모두 학살하라 명령하는 모습, 평양으로 오기 위한 배와 나루터를 모두 불태우라는 모습 등 선조는 왕권에 지나칠 정도로 집착하는 모습으로만 표현된다. 천한 노비가 왕과 대동하다는 정여립과 대동계에 발작적으로 반응하는 선조에게 천영과 종려의 브로맨스는 그 자체로 이미 신분제를 위협하는 요소일 뿐이다.

출처. 왓챠피디아

이러한 가운데 <전,란>에서 선조의 위치는 인식적으로 애매해진다. 표면적으로 천영과 종려의 갈등은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는 것처럼 서로를 향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반과 노비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쌓은 자신의 우둔함을 자책하고 그로 인해 가족을 모두 잃었다는 상실감으로 천영을 죽이려 하는 종려와 달리 천영은 면천이라는 목표에서 선조에 의해 '자령(진선규 분)'을 비롯 생사고락을 함께한 의병 전우들을 모두 잃으면서 역천을 통해 선조에게 복수를 하려 한다. 즉, 천영은 선조를 보고 있는 데 반해 종려는 천영을 보고 있다. 여기에 선조는 천영과 종려의 갈등 사이에서 갈등의 전면이 아닌 막후에서 종려를 조종하는 모습만 보인다. 그러나 종려는 선조와 마찬가지로 신분제에 의문을 갖고 있는 인물이 아니라 자신이 천영에게 시혜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신분제에 종속되어 있는 인물이다. 즉, 종려는 천영을 향한 우정 외에 선조와 같은 세계관을 갖고 있으며 선조는 종려를 통해 갈등의 전면에 있는 인물이다. 막후에 있어야 할 선조가 종려를 통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사구조에서 간접적인 빌런이자 보조 역할이어야 하는 선조가 모든 갈등의 원흉, 즉 직접적인 빌런이자 서사를 이끌어가는 메인 축으로 여겨진다.

출처. 왓챠피디아

천영과 종려의 브로맨스에 대한 의도가 애매한데 서사구조에서 선조의 위치도 인식적으로 애매해지면서 <전,란>은 정확히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도 모호하다. 오해의 점철로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다 모든 오해를 깨닫고 공동의 적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천영과 종려의 브로맨스로 애달프면서도 아름다운 감정에 관객을 빠뜨리고 싶은 건지. 과할 정도로 왕권에 집착하며 백성을 왕권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하고 천영과 종려마저도 슬픈 운명으로 이끈 선조에게 분노케 해 마음 깊은 곳 정치적 움직임이라도 일으키고 싶은 건지. 당연히 전자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박찬욱 감독이 각본에 참여했다는 정보의 영향으로 누가 그렇게 의도하고 있는지 애매하다. 서사구조에서 갈등을 추동하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면서 갈등의 막후에 있는 듯, 전면에 있는 듯 애매하게 존재하는 선조는 소금에 절여진 귀와 코를 받았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그의 악행에 대가를 치뤘다고 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선조라는 인물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6.25 전쟁 중 서울을 버리고 한강 철교를 파괴한 이승만 대통령이나 권력을 위해 자국민을 학살한 전두환 대통령 등 한국 근현대사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듯해 선조의 결말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만족하는 것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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