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존버 실패기] #7
동해 바다는 쪼랩 다이버인 내게 무서운 곳이었다. 무엇보다 추웠다. 바다 수온이 계절보다 두 달 정도 늦다는 것은 들었지만, 8월 동해는 추워도 너무 추웠다. 나는 가장 잘하는 수신호(상승:엄지 척)를 하면서 이빨을 덜덜 떨었다. 파도가 심한 날이라 역시나 시야는 좋지 않았고 물속 산호와 물고기는커녕 강사님조차 찾을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신기한 건, 그 시커멓게 짙은 감색 바다에도 어쨌든 바닥이 있었고 어찌하다 보니 그 바닥에 닿을 수 있었다는 거다. 처음 수영장에서 5m 수심이 너무 깊다고 느꼈던 것처럼 그곳도 내 생각처럼 깊은 악마의 구덩이가 아니었던 거다.
나는 종종 해보지 않고 더럭 겁부터 낼 때가 많았다. 결정을 미루면서 시간을 끌며 그 사이로 쑤셔 넣을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신중하다는 말 뒤에 숨어 방대한 양의 대차대조표를 만들고 여차하면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바다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무서워도 일단 하강을 해야 했고, 바닷속으로 먼저 내려가 봐야 다음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수면에서는 덜덜덜 너무 무서운데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오히려 두려움이 덜해진다. 고요한 바닷속에서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는 숨찬 돼지같이 헐떡이는 내 숨소리뿐이다. 차차 안정을 찾고 나면 숨도 평온해지고 바다는 더 조용해진다.
다시 수면으로 올라올 때는 다행히 바다 한가운데 상승 줄이 있었다. 천천히 그 줄을 잡고 올라오면 됐다. 그때 살겠다고 한 땀 한 땀 어찌나 줄을 꽉 쥐었는지 올라와보니 손바닥이 뻘겋게 부어있었다. 생존을 위한 어른의 곤지곤지였다. 그 뒤로도 나는 몇 차례 덜덜거리며 교육을 받고 나서 겨우겨우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다이빙은 이런 게 아니었다.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닷속에 내려가고, 뿌연 시야와 낮은 수온에 몸이 굳는 다이빙이 아니었다. 이렇게 가다가는 영영 다이빙을 무서워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또 하나의 뻘짓을 하게 되었는데, 따뜻한 바다에 가서 어드밴스드 자격증을 따기로 한 것이다.
선택지가 아주 많아서 계획부터 즐거웠다. 비행시간이 짧으면서도 교육비가 비싸지 않고 교육 다이빙 샵이 많은 세부를 골랐다. 비수기 시즌이라 비행기표도 아주 비싸지 않았다. 치사스럽게도 항공료 총액은 예약하기에 들어가서 탈 것처럼 클릭을 세네 번 더 해야 진짜 금액이 나온다. 홈페이지에 보이는 그 가격에 속지 않기 위해 반나절 정도를 클릭질하고, 제주항공보다 2만 원이 더 싼 에어 아시아로 끊었다. 짐을 부치게 되면 비용이 더 올라가므로 캐리어 따위는 못 가져가고 배낭 안에 짐을 바리바리 꾸겨 넣기로 했다.
곰은 듣자마자 내게 다시 물었다. '혼자서 간다고? 다이빙하러? 세부를?" 그러면서 나의 툭 튀어나온 입과 단호하게 씰룩이는 볼을 봤다. 결국 남편은 상당히 맘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다녀오라고 했다. 아들에게는, 엄마가 인도네시아 오피스로 출장을 가게 됐다고 했다. 면세점에서 초콜릿을 많이 사다 주겠노라 했다. 조산에 저체중으로 태어나 집중 관찰실에 들어갔다 온 신생아는 이제 부쩍 자라서 잘 다녀오라고 승낙해 주었다.
아이가 어릴 때에는 감히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그때는 젖소부인으로 살면서 떡진 머리 또는 쑥대머리, 늘어진 수유티를 입은 채 늘 몸이 부어 있었지. 너무 사랑스러워서 온 우주 같던 작은 아기를 안고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늘 불안했었지. 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낸 워킹맘 선배들이 너무 대단해 보였고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았지. 출근길마다 내게 안겨 어린이집 싫다고 울어서 검정 재킷에 얼룩덜룩하게 허연 눈물 자국을 남겼던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덧 저렇게 자라서 지가 얻어낼 수 있는 선물이 뭐가 있는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허락을 받아서 좋았다. 온갖 개고생을 하며 버텨온 직장에서 받은 돈을 나를 위해 쓸 수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 그냥 이렇게 잠깐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시간은 지나가고 아기들은 엄마의 가장 소오중한 것을 받아먹으며 쑥쑥 자란다. 그러니 지금 힘든 육아맘들이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어느 날 뒤돌아서면 아이들은 자기 속도로 쑥 자라나 있다고. 나는 비록 쑥대머리를 하고 키웠지만 아이는 밤톨 같은 머리를 하고 자라 있다고. 아이와 남편을 집에 두고 혼자 여행 갈 수 있는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안 올 것 같은데 그런 날도 있다고. 그러니까 천천히 기운을 내셨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