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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집엄마 Mar 25. 2021

밖으로 도는 남편을 잡은 방법

남편은 외로웠을지도..



음식 잘하는 여자랑 결혼하면 평생이 행복하다



이 말을 사람에 따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 있고

성평등 시대 속 여자에 대한 무시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말이지만

난 이 말이 어느 정도 타당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먹는 것에 약하다는 말도 옛날부터 어른들 입으로 전해 많이 들었었다.

그리고 난 실제로 비슷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1호가 3살

2호가 1살

난 육아에 찌든 화장실 청소용 수세미 같은 상태였고

겨우 아이들 밥과 이유식을 챙겨 먹일 수 있는 시기였다.

난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날들이었고

'여자'의 모습은커녕 '사람'의 몰골도 아닌 모습이었다.


다행히 아이들 수면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와

8시면 거의 육퇴를 할 수 있었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그 시간은 정말 나 자신만을 위해서만 보냈다.

배가 고프면 나를 위한 야식을 시켜 먹었고

밀린 드라마나 놓친 영화를 애들이 깰까 봐 음소거 수준으로 시청했다.


그렇게 육퇴 후 잠이라도 쓰러지듯 잤으면 좋았을 텐데

피곤함을 꾸역꾸역 이겨내며 자유의 시간을 보낸 뒤늦게 잠을 청했다.

몇 시간도 안 지나 새벽 5시가 넘을 때쯤이면 2호의 기상이 시작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덕분에 남편 출근하는 모습은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침밥은 커녕 1호 깨면 안 된다며 조용히 씻고 얼른 출근하라고 했다.


수면이 부족해 정신은 늘 몽롱한 상태였고

아이들 식사 외 나의 영양상태는 정상적이지 못했다.

그렇게 출산 전 쪘던 살은 빠지지 않은 그대로의 상태였고

날이 갈수록 난 더 무기력해지고 볼품없는 생명체가 되어 있었다.


그러다 문뜩 이상하다 생각된 날이 있었다.

'요즘 남편이 잘 안 보이네'

그리고 남편이란 존재가 기억나고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은 퇴근을 하고 저녁식사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총각인 동료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있는 동료들

회식

이런저런 핑계로

'식(食)'을 해결하기 위해 밖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걸 느끼는 순간

내 머리가 종 안에 들어가 누군가 그 종을 때린 기분이 들었다.

'아..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남편은 먹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미식가, 대식가 이런 건 아니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행복해하는 게 눈에 보이는 사람이다.

난 그걸 연애 초반부터 알았음에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이러다가 남편이 방황할 수도 있겠다.'

이 생각에 도달한 순간 난 내 정신의 풀렸던 나사를 다시 바짝 조였다.


"오늘 집에서 저녁 먹어."

라는 연락을 남기고 나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새우튀김을 튀기기 시작했다.

남편은 퇴근 후 신난 게 눈에 보일만큼 새우를 튀기고 있는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때의 난 요리실력이 별로였기 때문에 메뉴라고는 새우튀김 하나뿐이었다.

남편과 1호가 너무 맛있게 먹어줬다.

그 모습이 좋아 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난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조금씩 오로지 '엄마'만이 아닌 '주부'의 역할도 시작했다.


육아에 지쳐 마음이 어지러운 날에는 배달음식으로 때우는 날도 있었지만

조금씩 내가 직접 만들어 먹는 저녁밥상의 날들이 늘게 됐다.

똑같은 음식을 만들어도 그때마다 맛이 다르기도 했고

삶아야 하는 걸 날것으로 주기도 했고

간이 안 맞아 남기는 날이 있기도 했다.

그래도 남편은 억지로라도 먹어줬고 일부러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점점 내가 생각하던 가족의 모습이 보였고

여전히 육아로 몸은 힘들었지만 조금씩 정신이 차려진 덕에

다이어트도 크게 성공을 하고 건강도 많이 좋아지게 됐다.

운동을 하면서 삶의 활력이 생겼고 남편은 그것들로부터 마음의 평안과 퇴근의 즐거움을 얻었다.


우린 벌써 결혼한 지 올해 13년째가 된다.

지금은 남편이 흘리듯 무심코 뱉은 메뉴는

웬만해선 바로 그 다음날 저녁상에 내어줄 만큼 요리실력도 어느 정도 늘었다.

자신이 없거나 어려울 것 같은 메뉴는 주문을 하거나 사 와서라도 꼭 먹을 수 있도록 해준다.

남편의 입에서는 음식이 맛있을 때 나오는 감탄사들이 줄줄 새어 나오고

"진짜 맛있었어", "잘 먹었어"

라는 식사 후 인사말에는 진심이 담겨있다.


아직 못하는 음식도 많고 완벽한 밥상을 차려내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저질체력이라 금세 지쳐서 겨우 차려줄 때도 있고 투덜거리며 차려줄 때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이제 남편은 밖에서 일부러 저녁밥을 먹지 않게 됐다.

물론 남편이 가족을 사랑하고 퇴근의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가

식사때문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음식을 맛깔나게 잘해야지만 남편이 만족한단 말이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음식의 실력이 아니라 한 가지의 메뉴라도

가족들과 함께 본인을 위해 준비한 음식 속 따뜻함을 말하는 거다.

현대 사회의 가족이 대화를 나누고 가족애(愛)를 느낄 수 있는 시간 중

식사시간이 그 비중을 크게 차지한다고 한다.

식사를 하며 나누는 가족들과의 대화가 음식과 함께 어우러지면 아이들의 정서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 시간들 마저도 애들이 고등학교를 가거나 성인이 되면 힘들어진다고 한다.

훗날 애들이 없더라도 남편이 나와의 식사시간은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따뜻함을 느끼고 마음의 평안을 느끼고

집에서 먹는 '집밥'이 힘든 하루의 큰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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