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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 Jul 26. 2020

병든 시대의 병든 사람들, <괜찮은 사람>

강화길 소설집, 괜찮은 사람.

강화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다. 그렇다고 비현실적이거나 판타지적 존재들은 아니다. 그래서 황현경 평론가는 강화길의 이 소설들을 “병든 마음에 관한 사례연구”라고 했다.


소설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의 행동은 점점 더 기괴해질 뿐이다. 그리고 그 기괴함은 소설 바깥의 독자가 느낄 뿐이고 소설 속 인물들은 알지 못한다.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병든 마음이 가득하고 읽는 내내 탄식과 한숨이 끊이질 않았다. 작가는 병든 세계에서 병든 사람들이 자기가 병든 줄도 모르고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을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사는, 작가와 동시대를 사는 지금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소설을 읽는 나에게 잔인할 정도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병든 세계의 민낯과 직면하게 한다.


소설 ‘괜찮은 사람’은 “지난 일요일. 그가 나를 밀쳤다”로 시작해서 “돌아오는 봄, 우리는 결혼할 것이다”로 끝난다. 깊은 한숨이 난다. 왜 그랬는지, 꼭 그렇게까지 해야했는지 묻고 싶어진다.


소설 속 화자는 그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는가를 살피면서 눈치를 봤다. 왜냐면 스스로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 것과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서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만난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보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를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그리고 그렇게 때문에 소설 속 화자는 그와 만나면 안됐다는 걸 알았다. 왜냐면 그와 함께 하는 소설 속 화자는 점점 자신을 잃어갈 것이므로.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곧 괜찮은 사람의 준거가 되는 나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그와 만나면서 ‘그가 생각하는 그녀’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그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그의 세계에 갇히게 될 것이다.


그녀는 어느 순간 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끔직하게 부서질 것을 알면서도, 그를 사랑하는 일을 선택하고 말았다. 스스로 절망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소설 속 화자를 지켜보는 일이 괴로웠다. 그게 내 모습 같기도 하고 지금의 세계에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해서이다.  


강화길 작가는 독자에게 마주하고 싶지 않은 끝을 향해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를 직면시킨다.


태평성대에 사람들은 목가를 부른다. 어디서부터 얼마나 망가졌는지도 모르게 천천히 스러져가는 세계. ... 절망이 희망보다 안락하고 희망이 절망보다 불안하다면 우리는 끝을 향해 가고 있는 게 아닐까(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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