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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 Sep 29. 2017

걷기왕(2016)

그냥, 걷다가 멈추다가

걷기왕은 멀미가 너무 심해 그 어떤 이동수단도 탈 수가 없는 만복과 만복이의 눈으로 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만복은 편도 2시간씩 걸어서 학교를 간다.

그렇다고 걷는 데 소질이 딱히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걷는다.

걷는데 꼭 소질이 있어야하는것도 아니다.


걷기왕에서 만복의 캐릭터는 뭐든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성과를 내야만 인정받는 사회와 어딘가 조화롭지 못하다. (내가 보기엔) 자기의 세계가 확고하고 뚜렷하지만,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의욕없고 욕심없고 끈기없는 노력부족의 청소년이다. 만복의 주변에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만복을 통해서 평범한,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어떤 것들이 좀 다르게 보인다.


만복의 걷기는 그냥 삶이었다. 그냥 걷는 만복에게 걷기를 진로로 승화시켜준 사람이 있다. 만복의 담임샘이다. 담임샘은 순진하다. 그냥 마음이 착한 샘. 언제나 꿈을 향한 열정과 의지를 강조한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그러하듯이,  담임샘도 언제나 최선을 강조한다. 그래도 담임샘은 꼭 공부가 아니어도 된다고, 자기 반 학생들의 꿈과 끼를 찾아주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런 담임샘이 만복에게 육상, 경보를 권한다. 너는 매일 걸으니까, 걷기를 잘할거다라는 단순한 생각이다.


언제부턴가 모르는 것이 나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어느정도의 권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없이 맑고 깨끗한 담임샘은 좋은 의도로, 학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일들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만복의 짝궁이 되고 싶은 것은 공무원이다. 특별히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 같은 건 없다. 적당히 안정적이고 내시간을 갖을 수 있어서이다. 담임샘은 그런 학생을 이해를 못하고 계속 되뭍는다. 꿈 같은 건 없냐고. 꼭 직업이 아니더라도 세계여행이라던가, 하는 그런 꿈이라도.

꿈을 강요하는 것이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착취하기 쉬운 구조라는 생각도 든다. 꿈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하기 쉬우니까. 만복의 짝은 그런 착취를 거부하지만, 담임샘은 도무지 이해를 못한다.


현실을 꿰뚫고 꿈같은 건 애초에 만들지 않는게 낫다고, 구조를 거부해버리는, 마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필경사바틀비 같은 만복의 짝궁과 다르게 최선을 다하고 언젠가는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청춘도 있다.


만복이 짝사랑하는 배달부 오빠는 가수가 꿈이다. 지금은 배달부에 불과하지만 언제가는 유명한 가수가 될 거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를 보면 꿈에 저당잡혀 사는 삶이 반드시 불행하다고만 볼 수도 없다. 그나마라도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이 (현실 가능하든 아니든) 꿈이기 때문이다.  그의 특징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본다는 점. 만복을 언제나 만숙이라고 부른다. 몇번을 말해도 똑같다. 그렇게 그는 현실을 외면하고 희망찬 미래만 상상하면서 산다.  

만복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선배 남수진.

수진은 육상선수였다가 큰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그나마 덜 무리가 되는 경보를 택했다. 그렇지만 경보도 만만치 않아 부상을 달고 산다. 늘 부상을 숨기고 몇배의 노력을 한다. 수진은 만복에게서 멈춤을 배운다.


나도 그렇다. 걷기왕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멈추는 것"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서, 지금까지 해 온게 아까워서, 다른 사람들 눈이 의식돼서 멈추지 못하고 스스로를 착취하면서 끊임없이 달린다. 만복이 노력해도 안된다면서 육상 그만하겠다고 했을 때, 담임샘은 노력에는 끝이 없다면서 만복을 만류했다. 닿을 수 없는 어딘가의 존재 때문에 삶 전체를 쏟아붓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묻게 된다.


또 삶은 의미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대해서도 만복은 묻는다. 그냥, 걸어도 되는 것 아닌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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