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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시 Aug 14. 2017

바깥은 여름(김애란, 2017)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하여

바깥은 여름. 

왠지 쓸쓸한 두 단어의 조합이다. 

처음엔 바깥이라는 단어는 어딘가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인 것만 같고, 여름이라는 단어는 밀려난 사람들의 견디기 힘든 삶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바깥이 아니고 안이면 괜찮은 걸까하는 질문이 들었다. 바깥이 여름이면, 안은 겨울인데, 겨울은 여름만치 견디기 어려운, 춥고 외롭기까지 한 그런 계절이다. 그러니 바깥이 여름이면, 안이라고 해서 좋을 게 없다. 생각은 바깥에서 여름을 나는 이들이나, 안에서 겨울을 나는 이들이나 쉬운 삶은 없다는 데까지 흘러갔다. 소설집 '바깥은 여름'엔 안팍으로 고된 삶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소설 속에는 각자의 계절에 갇혀 다른 계절을 이해하지 못하는 단절된 개인들이 있다. 작가는 바깥은 여름이라는 표제를 풍경의 쓸모의 한 구절에서 따 왔다고 했다. 안과 밖의 시차를 온 몸으로 겪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 소설이라는 말인가보다.


풍경의 쓸모에서 정우는 어머니의 환갑을 기념해 태국으로 가족여행을 간다. 한국은 겨울인데, 여름의 한 가운데인 태국에서 정우는 안과 밖의 시차에 대해 생각한다. 정우의 아버지는 여자 때문에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정우는 갑작스럽게 연락을 해 온 아버지가 당연히 아내의 임신 소식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여자의 병원비를 빌리려는 것이었다는 데서 시차를 경험한다. 그리고 정우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모두가 싫어하게 함으로써 자신만 사랑하려는 것 같다고도 말한다. 시간강사인 정우는 곽교수를 대신해 교통사고를 낸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자신이 지원한 교수채용에 곽교수가 힘을 써줄까 기대를 했지만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러니까 곽교수가 정우를 강하게 반대하면서 교수 채용에서 낙방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세계에 갇혀 그 바깥이 여름인 줄을 모른다.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182쪽, 풍경의 쓸모).


한국은 겨울인데 태국은 여름이었다. (중략) 1월. 연이은 한파와 폭설 속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분주해보였다. 반면 차창 너머 여름은 느긋했다. 푸르고 풍요롭고 축축해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된 정보를 들여다보고 있자니 손에 스마트폰이 아닌 스노볼을 쥔 기분이었다.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156쪽, 풍경의 쓸모)


첫 작품인 '입동'과 마지막 작품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차례로 읽었다. 

두 작품 모두 세월호를 연상케한다. 

입동은 5살 아이를 잃은 엄마의 이야기를 남편의 시선에서 읽었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학생을 구하려다 돌아오지 못한 교사를 남편으로 둔 아내의 이야기이다. 


입동에서 아내는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는데, 평범함이 무너진 날로부터의 두달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부정적 시선, 이를테면 보험금이나 보상금에 관한 루머들과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의 무심하고 무례한 행동들에 대한 이야기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그것과 닮아 있다. 


남편은 아내를 이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다. 누구도 하루아침에 아들을 잃은 아내의 상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남편인 화자는 최선을 다해 아내를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소설의 첫 시작과 끝이 그렇다. 


자정 넘어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 지금? 

- 응. 

소파에서 주춤대다 "그래"하고 일어났다. 아내가 뭔가 먼저 '하자'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다(9쪽, 입동).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는 멍하니 아내 말을 따라 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 

그러곤 내가 아내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아내가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봤다(37쪽, 입동)


자정 넘어 갑자기 도배를 하자는 아내의 요청에 남편은 기꺼이 응한다. 도배라는 생뚱맞은 일이 그들에게 아들을 떠나보내는 일종의 의식 같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입동'에서 부부를 제외한 사람들은 대체로 무례하거나 무심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무감각하다. 


'가리는 손'에서 그것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재이는 한국인인 엄마는 혼혈인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선을 긋는다. 엄마인 나는 그런 재이가 안쓰럽고 안타깝다. 그러다 불현듯 청소년 무리가 한 노인을 학대하는 장면을 바라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재이가 손으로 얼굴을 가린 것이 어쩌면 웃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재이에게 없는 "예의"를 재이의 문제로 돌릴 수만도 없는 것 아닐까.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진 엉망진창인 세계를 재이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끔 아이 몸에 너무 많은 소셜이 꽃혀 있는 게 아닌지 걱정된다. 온갖 평판과 해명, 친밀과 초조, 시기와 미소가 공존하는 사회와 이십사 시간 내내 연결돼 있는 듯해. 아이보다 먼저 사회에 나가 그 억압과 피로를 경험해본 터라 걱정됐다(212, 가리는 손)


불현듯 저 손, 동영상에 나온 손, 뼈마디가 굵어진 손으로 재이가 황급히 가린 게 비명이 아니라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그렇다면 그동안 내가 재이에게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윽고 눈뜬 아이가 맑은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220, 가리는 손)

 

그리고 그건 노찬성과 에반의 노찬성에게도 나타난다. 묶여있던 개를 데려와 보살펴주고 아픈 개를 병원에도 데리고 간다. 노견인 에반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 안락사를 시켜주려고 전단지 알바를 하고 돈을 모으지만, 몇번의 어긋남 이후 찬성은 그 돈의 일부를 우연히 얻게 된 스마트폰의 유심칩을 사는데 쓰고, 터닝메카드와 핫바를 사는 데 썼다. 그러고는 그 것이 우리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고 합리화를 한다. 에반은 그런 찬성의 마음을 읽었는지, 찬성이 힘들게 모은 돈을 자기의 편안한 죽음을 위해서 쓰지 않아도 되도록 한다. 그러니까, 노창성과 에반에서 "예의"는 에반, 그러니까 개에게만 있다. 그렇다고 노찬성을 막돼먹은 인간이라고 폄하할 수도 없다. 노찬성은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없었던 삶을 살아왔으니까. 그런 그에게 자기 것을 에반에게 내어 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용서를 주문처럼 외운다. 


- 할머니, 용서가 뭐야?

아이스박스 캐리어 옆에서 흙장난을 치던 찬성이 물었다

 - 없던 일로 하자는 거야? 

할머니는 대답 대신 볼우물이 깊게 패게 담배를 빨았다. 담배 연기가 질 나쁜 소문처럼 순식간에 폐속을 장악해나가는 느낌을 만끽했다. 그 소문의 최초 유포자인 양 약간의 죄책감과 즐거움을 갖고서였다. 

- 아님, 잊어달라는 거야?

찬성이 채근하자 할머니는 강마른 손가락으로 담뱃재를 바닥에 톡톡 털며 무성의하게 대꾸했다. 

- 그냥 한번 봐달라는 거야. (44, 노찬성과 에반) 


'침묵의 미래' 속 박물관에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보존할 언어로만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라져가는 언어를 보존하기 위한 박물관에서 언어는 있으되, 대화하는 사람은 없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명지는 시리와의 대화에서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한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예의'였다(238)." 여름을 나는 바깥 사람들에게 가져야할 최소한의 예의마저 상실해가는 사회에 대해 작가는 한마디 하고 싶었던 것을 아니었을까. 도무지 남편을 이해할 수 없던 명지가 남편을 이해하게 된 건, 다름아닌 남편의 제자였던 권지용의 누나로부터의 편지를 받은 순간이었으니까. 명지는 권지용 학생의 누나로부터 "뭐라 드릴말씀이 없네요"라는 예의있는 한마디때문이었다. 


위안이 된 건 아니었다.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거나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한 기자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아닌 '예의'였다. 내친김에 나는 그즈음 가장 궁금하던 것 중 하나를 물어보았다.

-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표정을 알 수 없는 시리의 캄캄한 얼굴 위로 지성인지 영혼인지 모르르 파동이 희미하게 지나갔다. 시리는 무척 곤란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 인간에 대한 포기인지 단념인지 모를 반응을 보였다. 

 -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238쪽,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한 자 한 자 글씨를 따라가다가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요'라는 부분에선 그만 쓸쓸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언젠가 "인간에 대해 물었을 때, 시리가 같은 대답을 들려준 적이 있어서였다. 편지지 위 삐뚤삐뚤한 글씨를 좇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흐려졌다. 눈앞에 얼룩진 문장위로 지용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살려주세요. 소리도 못 지르고 연신 계곡물을 들이켜며 세상을 향해 길게 손 내밀었을 그 아이의 눈이 아른댔다. (중략)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266쪽,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여름을 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어땠는지 불현듯 돌아보게 된다. 바깥에서 여름을 나는 사람들은 거창한 위로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아주 단순하게 그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켜주기를 바란다. 그마저도 쉽지 않을만큼 추운 겨울을 지나고 있어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예의를 자꾸만 잃어버린다. 작가는 그것이 슬펐던 것은 아닐까. 


예의라는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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