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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 Dec 08. 2021

나이가 자란다는 것

마음이 단단해져야 하는 일

초등학생 때에는 친구들과 노는 게 전부였다.

중, 고등학생 때는 친구와 공부가

세상에 전부인 줄 알았다.

그것만 끝나면 힘듦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했다.


대학생이 되고, 20살이라는 성인의 타이틀을 갖게 되자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

갑자기 2배가량 커진 느낌이 들었다.

성인이니까 내가 나를 감당해야 했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학교에 늦지 않도록

제시간에 일어나야 했으며

방학 때는 모자란 용돈과 학교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고자 알바를 끊임없이 했다.


그래도 그때는 좋았다.

대학생만 하더라도 웃고 떠들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고,

과제라는 무게는 나 혼자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사회에 나가고 사회초년생을 거쳐 몇 년이 흐르자

나는 점차 웃음이 사라져 갔다.

나의 오랜 친구의 입을 통해서 듣고 난 후 깨달았다.

난 그 전보다 훨씬 밝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사회에서 일을 하고 밤을 새우며,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의 일들이 많아졌고,

그만큼의 책임감이 따랐으며, 밑에 후배가 생기자

그들에게 좋은 선배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때 즈음 부모님의 시계가 점차 빠르게 흘러갔다.


친구들의 부모님보다 10살 정도 많은 나의 부모님은

그 당시 30세가 넘는 나이에 결혼을 했다.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 아래

나와 언니는 그것들을 거름 삼아 자라났다.


그리고 20대 후반이 된 지금

부모님은 희생의 결과물로

몸 이곳저곳이 고장 나기 시작했다.

몇 개월 전 아빠의 수술에 이어 엄마가 입원을 했고,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아 시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엄마에겐 수술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냐며,

시술로 끝나서 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연신 엄마의 걱정을 덜어주느라 애썼다.

시술비와 병원비에 부담을 덜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엄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복잡했다.

내가 지금쯤 자리를 잡았다면,

그전에 사회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면,

상황이 나아졌을까라는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다시금 찾아왔다.


그래도 '내가 시간을, 세월을 막을 순 없으니까'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싶었다.

물론 할 수 있는 일이 크게 많지는 않다.

내가 수술을 하는 의사도 아니고, 대신 아파줄 수도 없다

그저 묵묵하게 곁을 지키고,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버팀목이 되어보는 것 정도다.


나이가 자란다는 것은

마음도 같이 자라야 하는 일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도

나보다는 당신의 안부를 먼저 살펴야 하는 일이 아닐까.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월은 공평하게 흐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얼마나 얼마큼 자랄지는 나의 몫이다.

나는 입버릇처럼

'내 나이를 내 허락도 없이 누가, 왜 먹게 두는 거야'라고

소리치지만 자연의 현상을 거스를 순 없으니

약간의 순응과 약간의 반항을 섞어가며 살아봐야겠다.


그래도, 내가 받은 사랑과 희생을

보답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주어졌으면 한다.


여전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어렵다.

그러니 조금만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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