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의 무코리타 (2023, 오기가미 나오코)

슴슴한 공존, 상실의 형태

by 혜인


영화는 주인공 야마다가 강변의 허름한 연립주택에 입주하며 시작된다. 야마다는 출소 후 작은 공장에 취직해 새 삶을 살아보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이 쉽지만은 않다. 어린 시절 이혼해 연락이 끊긴 아버지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고, 무연고자였던 아버지의 유골을 갑작스레 맡게 된다. 그런가 하면 옆집 이웃 시마다는 제 집처럼 공간을 침범해 오고, 딸과 둘이 사는 집주인 미나미도, 아들과 함께 묘석을 팔러 다니는 미조구치도 어딘지 범상치 않은 모양새다. 이들과 함께 하는 동안 야마다의 일상은 조금씩 변해 간다. 함께 밭일을 하거나, 스키야끼를 나눠먹거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푸념을 들어준다거나 하는 아주 슴슴한 형태로.


갓 지은 따뜻한 쌀밥, 짭짤한 오징어 젓갈, 아삭하고 시원한 오이와 토마토. 덜덜거리는 선풍기와 앞마당을 넘어 들어오는 햇볕, 버려진 고물들과 들리지 않는 전화기, 하늘을 떠다니는 금붕어. 무코리타 연립주택을 그리는 이미지들은 지극히 소박하고 단조롭다. 그 속을 살아가는 이웃들은 모두 조금 엉뚱하고, 어딘가 어긋나 있고, 한 부분씩은 모자라다. 그럼에도 이들은 그 평온한 일상을 나눌 줄 안다. 서로의 모난 부분은 적당히 모른 체하고 서툴게나마 안아주기도 하면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계속해서 공존의 다른 형태를 탐구하고 있는 듯하다. 함께 식사를 하던 <카모메 식당>과 함께 호흡을 나누던 <안경>에 이어, <강변의 무코리타> 속 인물들은 죽음을 함께 견딘다. 야마다는 아버지를, 시마다는 아들을, 미나미는 남편을 잃은 경험이 있고, 미조구치는 살기 위해 누군가의 죽음을 기다려야만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각자가 죽음을 견디는 방식은 여러 갈래지만, 이들에게 상실은 아주 어둡거나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오래전 사망한 이웃 할머니가 귀신이 되어 나타났다고 해도 괘념치 않고, 드문드문 슬퍼질 때면 농담과 함께 웃어넘길 줄 아는 힘이 있다.


결말에 이르러 야마다는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며 49재를 치른다. 해는 어김없이 태어났다 사라지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오고 있다. 야마다의 뒤로, 저마다의 옷과 악기를 장착한 어설픈 이웃들은 누군가의 혹은 서로의 안녕을 빌어준다. 조금 이상하고 모자라면 어떤가. 슴슴하게 이어지는 공존 속에서, 상실의 형태는 보다 둥글어진다. 그 순간들을 담담하게 포착해 내는 영화의 시선이 못내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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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코리타'는 불교의 시간 단위로 하루의 1/30, 약 48분을 뜻한다고 한다. 이 시간이 낮과 밤이 바뀌는 때, 변화의 한 지점을 의미한다고도. 내게 이번 여름은 늘 그 경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오래 알고 오래 좋아했던 친구를 떠나보냈고, 무리하게 나를 소모시켰던 일을 떠나왔다. 유예의 날들은 미지근하게 흘러간다. 잠깐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가 또 여전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슬프다가 기쁘다가 한다. <강변의 무코리타>는 그런 순간들을 꼭 닮아있어서, 내게는 조금 더 특별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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