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하우스 (2024, 전지영)

실체 없는 불안과 마주하는 일

by 혜인

특히 집은 내게 하나의 인물에 가깝다. 십대 시절부터 혼자 산 탓에 집은 가장 친밀하면서 동시에 두려운 대상이다. 넓고 휑한 거실 한가운데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이. 그건 꽤 긴 시간 나와 동행한 이미지다. '타운하우스'가 안온함, 여유, 풍요로움을 상징한다면, 그 안에서 사는 나는 대척점에 존재하는 불안과 외롭게 싸워온 셈이다.


전지영의 공간은 온통 축축하고 눅눅하다. 작가의 말처럼, 혼자 우두커니 앉아 불안과 외롭게 싸우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게 한다. 혹은 한차례의 화마가 지나간 후 잿더미만이 남은 폐허, 그 속에 잃어버린 것이 남아있지는 않은지 고요하게 돌아보는 사람의 발자국 같은 것. 여덟 편의 단편은 타운하우스와 관사, 어시장, 철거를 앞둔 아파트, 부유층이 사는 동네 등지를 오가며 그곳에 사는 인물들의 불온한 내면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어떤 것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사실이 은애에게 작은 위안을 주었다.


<맹점>의 은애와 <말의 눈>의 수연은 여전히 과거의 잔상 속에 갇혀 있는 인물들이다. 이는 그들이 겪었던 일련의 경험들이 작금의 현실과 기묘한 대칭을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양원에 있는 남편을 둔 은애는 아빠를 간병하며 악착같이 절망과 싸우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고, 학교폭력 피해자의 부모인 수연은 딸이 또 다른 사건의 방관자가 된 상황 속, 가해자의 엄마 지희와 마주한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의 기억 속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어지러지는 상황 속, 은애와 수연이 발견하는 것은 애써 감춰두었던 비밀스러운 욕망이다.


물이라도 입에 흘려 넣어볼까, 생각하던 수연은 지희의 인중에 흥건히 고인 물을 보고 저도 모르게 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혹여 그 웃음소리를 누가 들을까봐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수연은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희가 깨어나지 못하길 바라는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수연은 사고로 쓰러진 지희의 앞에서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은애 역시 남편에게 "당신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본심을 고백한다. 눈앞의 상대가 사라지기를, 그리하여 이 모든 혼란 속에서 해방되기를. 불온한 욕망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또 어느 곳으로 가는가. 작품은 답을 주지 않는다. 도로 위의 말과 마주하는 <말의 눈>과 먼 바다로 휴대폰을 던져버리는 <맹점>의 결말은 인상적이다. 그 이미지가 자체로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작품을 읽는 우리를 끝끝내 실체 없는 불안 속에 남겨두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체 없는 불안은 <쥐>와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에서 역시 서사 전반을 지배한다. 앞선 두 작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의 불안은 분명한 촉매제와 함께 형상화된다는 사실이다. <쥐>는 보이지 않는 위계가 팽배한 해군 관사 단지를 배경으로 한다. 폐쇄적인 공간 속에서 관계 맺는 인물들은 어쩐지 모두 의뭉스럽다. 답답함을 느끼던 윤진은 어느 날, 아파트에 '쥐'가 산다는 소문을 듣는다. 절대 없어지지 않고, 꼭대기층까지 하수구를 타고 올라온다는 쥐. 윤진의 불안은 쥐에 관한 소문과 함께 구체화된다. 흠결 없어 보이던 남편이 실은 인명사고 은폐의 주동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점차 윤진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진짜 총이었대도 쐈겠지. 당신, 나 쏘고 싶은 거 아니었어? 잘됐네. 그래, 쏴보니까 기분이 어때?"

"끔찍해."

"내가 화를 내서? 아니면 소리를 질러서?"

"아니, 당신이 너무 잘 알고 있다는 거. 그게 너무 끔찍해."


<쥐>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쥐의 존재를 찾아 나서는 작품이라면, <난간에 부딪힌 비가 집 안으로 들이쳤지만>은 늘 존재했지만 한 번도 보려 하지 않았던 감정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여기서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은 실수로 발사된 에어건의 '총알'이다. 아들의 사고 앞에서 혜경과 윤석은 각자의 죄책감을 타인에게 전가한다. 회피와 침묵을 택하며 위태롭게 이어져온 부부의 평화는 총알이 발사되는 한순간의 균열로 깨어진다. 너무 오래 불안에 잠식되었던 인물들에게 감정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는 분명하게 슬픔을 직시하는 시선이 있다. 폭우가 몰아치는 날, 윤석은 다시금 아들의 사고 현장을 찾고 오랫동안 외면해 온 수치심을 들여다본다. 불안과 죄책감 속에 기꺼이 자신을 내맡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보이는 바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것만이 내게 부여된 단 하나의 진실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책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한 <남은 아이>의 결말부를 들여다본다. 보이는 바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단 하나의 진실이라는 문장이 소설집 전체와도 닮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지영의 소설은 과장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건조한 태도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 내지는 현상들을 관조한다. 실체 없는 불안과 마주하는 일은 외롭기도, 슬프기도, 때로는 불온하기도 하다. 우리는 삶의 지난한 진실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작가는, 감추고 싶은 이면까지도 그대로 바라보는 일, 위장과 은폐 없이 견뎌내는 일, 그렇게 계속해서 살아가는 일이라고 답하는 것 같다.


일상 속의 미묘한 균열을 포착해 내는 작가의 시선이 좋다. 부서지고 깨어지는 공간들, 감각들. 개인적으로는 전반부의 네 작품이 몹시 좋아서 후반의 이야기들이 아쉽기는 했지만, 다음 책이 나온다면 챙겨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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