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 입사하고 2주가 지났을 무렵 첫 출장이 잡혔다. 계약서만 하나 교부해 오면 되는 간단한 출장이었지만 문제는 당일 오후 3시에 잡힌 출장이란 것이었다. 지금이라면 갖은 핑계를 대서라도 당일 오후 출장은 피하려 했겠지만 입사 2주차된 신입사원한테 본인의사표현이란 해서는 안 되는 행위처럼 여겨졌다.
출장지가 천안이었으니 ‘그래도 오늘 안에는 올라올 수 있겠구나’ 라며 나름 안심을 했지만 그녀와의 저녁 약속을 깰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나에게 서울에 도착하면 몇 시쯤 될 것 같냐며 물었고 나는 8시 정도라고 했다.
그녀 또한 그 당시엔 취업준비로 꽤나 바빴을 시기였으므로 그럼 집에 가는 길에 잠깐 얼굴만 보고 가자며 애써 괜찮은 척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금세 끝날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고객과의 미팅이 길어졌고 미팅이 끝났을 땐 이미 8시가 되어있었다. 그녀에게 좀 늦을 것 같다며 먼저 들어가라 했지만 그녀는 본인도 늦을 것 같다며 조금 기다려도 괜찮다고 했다.
대학생 때라면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상황이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자꾸 불안해졌다. 대학생 때였다면 왠만한 일은 제쳐두고 그녀를 만나러 달려갔을 테지만 그러지 못하게 된 현실이 서글퍼서 그랬던 것 같다. 미팅이 끝나고 상사분이 저녁을 먹고 가라며 쥐어준 만원으로 택시를 잡아탔다. 곧장 천안역으로 가서 구로행 급행열차를 탔다.
1시간 20분, 구로역까진 급행열차를 타도 1시간 20분이 걸렸다. 그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고 야속하게 느껴졌다. 날씨라도 좀 따뜻했다면 마음이 놓였을 텐데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나는 그녀에게 날씨가 추우니 집에 가라고 했지만 그녀는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나의 말에 먹을 것을 좀 사가겠다 하였다.
별것도 아닌 이야기에 자꾸만 목이 메었다. 사람 몇 명 앉아있지 않은 휑한 지하철 안조차 서글프게 느껴졌다. 가진 게 없어도 어떻게든 그녀만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며 자신했던 나였지만 갓 사회에 나온 내 자신은 너무나도 초라했다. 현실은 갑작스러운 출장에 그녀와의 저녁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추운 날씨에 그녀를 기다리게 만들어야 했다.
9시 30분이 좀 넘은 시각에 구로역에 도착했다. 구로역에 도착하니 기억이 났다. 구로역은 지상에 있었다. 완벽하게 추위를 피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대합실로 올라오니 그녀가 날 보며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은 내 손보다도 차가웠다. 검은 비닐봉지에 담긴 주먹밥과 계란을 보자 왠지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나에게 왜 우냐며 묻지 않았다. 그날 쌀쌀했던 지하철 대합실에 앉아 나눠먹었던 주먹밥과 계란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기억은 나에겐 너무 슬픈 기억이었다. 그래서 2년이 다되도록 그녀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감정들이 좀 무뎌졌을 무렵 그녀에게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도 슬픈 기억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왜? 나는 좋았는데?” 라며 웃어 보였다.
나에겐 슬펐던 기억이 그녀에겐 행복한 기억이었던 이유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