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바람 Sep 07. 2020

세상이 우리를 시험할 때 #01

회사원의 연애가 힘든 이유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이전에 그녀가 대학생이었을 땐 꽤나 자주 전화가 왔었던 것 같은데 오늘은 한통도 오지 않았다. 먼저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요새 많이 힘들었겠지'


그녀가 취업을 함과 동시에 나는 퇴사를 했다. 이전부터 생각만 하고 미뤄오던 퇴사라 사실 별다른 고민은 하지 않았다. 근 보름 사이에 그녀와 나의 처지는 180도 바뀌었다. 


회사를 다닐 때 자주 했던 생각이 있다. 그녀도 회사원이 된다면 나를 이해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이었다. 사실 그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던 것 같다. 그녀 또한 직장생활에 있어서 내가 느꼈던 것과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대부분 그런 답답함은 업무가 아닌 대인관계에서 온다. 하지만 그녀의 대응방식은 나와는 좀 달랐던 것이다. 


그녀와 나는 4년이라는 긴 시간을 만나왔지만 성격적으로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가끔가다 '너와 내 성격이 비슷했다면 아마 이렇게 오래 만나지 못했을 거야'라는 농담을 했을 정도로 그녀와 내 성격은 많이 달랐다. 그 성격차이는 사람을 대하는 문제에 있어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왔다. 


나의 경우 회사생활이나 사적인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문제가 생기면 그걸 싸움으로 몰고 가는 편이었다. 물론 그들과 싸우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와 나 사이에 발생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길 원했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조급함은 당장의 해결책은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와 나 사이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나와 다르게 그녀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녀는 감정이 식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았다. 그 과정을 듣는 나는 꽤 자주 짜증이 났다 '왜 그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었어?' '왜 뭐라고 하지 않았어?'와 같은 질문을 자주 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그들이 먼저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만들었다. 본인이 참고 인내하는 시간은 나보다 더 길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나보다 더 나은 방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직장생활에서의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준 것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됐을 것이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 나의 그런 조급함과 어리석은 판단이 그녀 또한 힘들게 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입장이 바뀌어보니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내가 바쁘고 신경 쓸 일이 많다는 핑계로 상대방에게 조금 더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빈자리와 미안함을 물질로 채우려 했다. 그거면 내 성의가 표현이 되는 줄 알았다. 대학생 때보다 그녀에게 더 많은 것을 사주고 더 많은 돈을 썼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가진 게 없었던 대학생 때보다 그녀는 더 외로웠을 것 같다. 


그녀가 첫 월급을 받았을 때 그동안의 보답이라며 지갑을 선물해주었다. 평생 써본 적도, 내 돈을 주고 살 엄두도 내지 못했던 지갑이었지만 생각만큼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첫 월급을 타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도 알고 있었고 이런 금액을 나에게 쓴다는 것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그랬을 것 같다. 내가 비싼 저녁을 사주었을 때보다 사랑한다고 우린 잘하고 있다는 말 한마디에 더 활짝 웃었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할 일이 많다는 것과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이 상대방에 대한 관심을 덜어내도 된다는 핑계가 되진 않는다. 우리가 그와 그녀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웃는 모습과 나를 따뜻하게 해주는 말 한마디, 함께 보냈던 별 대단할 것 없는 시간 아마 그 정도이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세상이 우리를 시험할 때 # 0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