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가 헤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했다. 객관적인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했다. 몇 가지가 있었다. 굳이 하나하나 열거하지 않아도 앞으로도 순탄치 않을 것이란 것은 이미 우리 둘 다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어렸던 시절에 우리의 관계를 인정받지 못했을 때 '어차피 결혼하자는 것도 아니고 연애를 하자는 건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무시를 했어야 했다. 이후에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됐지만, 그녀는 이렇게 오래 만날 것이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었다고 했다. 그 시절에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실적인 문제라고 할만한 것들은 사실 생각하기 나름이었다. 따지자면 끝이 없었고 타협하자면 답은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주먹밥만 먹어도 행복했고 오히려 이제는 그때처럼 벤치에 앉아 주먹밥을 먹으러 갈 시간이 없다는 것이 더 서글픈 나이가 됐다.
하나하나 잘 되어갈수록 부모님의 의견 앞에 무력했던 그 시절보다 힘이 생겼지만, 나를 만나는 것이 그녀의 인생에서 최선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녀는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었고, 사실 나보다도 잘났었다. 애당초 그녀의 부모님이 반대했던 이유는 정말 객관적이었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을 때부터 그녀와 정말 자주 싸우게 되었다. 그녀가 나에게 화가 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의 생각에 사로잡혀서 되도 않는 걱정을 하며 쓸데없는 그런 감정들을 본인에게 풀지 말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의미 없는 걱정이고 생각들일수 있지만, 그녀의 입장을 생각했을 뿐인데 라며 나도 화를 냈었다.
어느 날 그녀에게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는 근거 없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정말 당연하게도 그 이별은 두 시간이 채 가지 않았다. 반대를 무릅쓰고 지켜온 4년여의 관계가 깨닫게 해 준 것이 하나가 있다면 세상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정말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사랑할 사람 정도는 그리고 그녀가 사랑할 사람 정도는 본인의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이 후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힘들었던 적은 셀 수도 없지만 후회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가 헤어지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