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세월'을 기억하며

by 신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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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세월'의 모습은

다시 시계를 3년 전으로 돌렸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세월'이 가라앉는 모습만을 지켜봐야만 했던

그날이 겹쳐질 수밖에 없었다.


처참하게 빛 바랜 '세월'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짐을 느낀다.

하물며 유가족들이 느낄 감정들은

감히 상상해볼 수조차 없다.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앞으로 '바다'를 볼 때 이제 우리 눈에는 바다 외에 다른 것도 담길 것이다.

'가만히 있어라'는 말 속엔 영원히 그늘이 질 거다.

특정 단어를 쓸 때마다 그 말 아래 깔리는 어둠을 의식하게 될 거다.

어떤 이는 노트에 세월이란 단어를 쓰려다 말고 시간이나 인생이란 낱말로 바꿀 것이다.

4월 16일 이후 어떤 이에게는 '바다'와 '여행'이,

'나라'와 '의무'가 전혀 다른 뜻으로 변할 것이다.

당분간 '침몰'과 '익사'는 은유나 상징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본 것이 이제 우리의 시각을 대신 할 거다.

세월호 참사는 상으로 맺혔다 사라지는 게 아니라

콘택트렌즈마냥 그대로 두 눈에 들러붙어 세상을 보는 시각, 눈 자체로 변할 것이다.


그러니 '바다'가 그냥 바다가 되고 '선장'이 그냥 선장이 될 때까지,

'믿으라'는 말이 '믿을 만한 말'로, '옳은 말'이 '맞는 말'로 바로 설 때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지금으로서는 감도 오지 않는다.



김애란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중에서



일러스트 출처: 플로비 (http://blog.naver.com/nii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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