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물 평범주의보
방 안에 쌓아 두었던 몇 백 권의 책이 이제 모두 내 손을 떠났다.
조금씩 꺼내놓는 책 속 평범한 이야기들.
#봄, 벚꽃
나이가 들면 들수록 꽃에 대한 감흥이 점점 옅어지긴 하지만, 여전히 꽃을 보면 설렌다.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듯 봄이면 역시 벚꽃이다. 보랏빛 진달래, 샛노란 개노리도 물론 예쁘지만 여리여리, 분홍분홍한 벚꽃을 보면 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난 경희대학교 안에 있는 여자고등학교를 나왔다. 고등학생 시절을 추억하면 3년 내내 강제 야자를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루 15시간 동안 학교에 갇혀 있었던 암흑 같은 시간. 그래도 4월이 되면 '벚꽃 추억'이 밀려온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 시즌이 되면, 학교에서는 대대적으로 단축수업을 단행했다. 5~6교시를 점심시간 이전에 모두 마치고 오후 시간에 벚꽃 산책을 떠나게 해주었다. 공부, 교육에 엄청난 힘을 쏟았던 학교가 '로맨틱한 낭만'의 시간을 주었던 거다. 벚꽃이 예쁘기로 유명한 경희대 캠퍼스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꽃 내음을 맡았다. 온종일 학교에 갇혀 있었던 탓에 모처럼 맞는 햇살이 무척 반가웠다. 남고 애들이 벚꽃 구경한답시고 여고 근처까지 와서 선생님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며 혼나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하고. 고등학생 때의 기억 때문인지 벚꽃이 내겐 휴식 같은 이미지다. 꽃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잠시 여유를 가져야만 누릴 수 있으니까.
벚꽃 하면 김연수 작가의 소설도 떠오른다. 매년 벚꽃 필 때쯤 생일이 돌아온다는 작가의 글에는 벚꽃을 향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 있다. 그가 쓴 <벚꽃 새해>라는 단편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벚꽃이 흐드러진,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벚나무 가지가 뻗어 있고,
그 가지들마다 하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 서 있는데 외롭지가 않다니
신기하다고 성진은 생각했다.
뷰파인더로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마다 외로움을 느꼈는데 말이다.
벚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말하자면 오늘은 벚꽃 새해.
'벚꽃 새해'라는 말이 참 좋다. 우리나라에서 새해는 춥디추운 겨울에 찾아오지만, 사실 꽃이 피는 봄이 되어야 뭔가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느낌이니까. 올해도 벚꽃이 피고 졌다. 이제 꼬박 1년을 기다려야만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벚꽃을 볼 수 있다. 내년 벚꽃을 볼 때쯤이면 나도 한 뼘 정도는 자라있겠지.
- 2017년의 덧붙임: 이 글을 쓴 지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올해 벚꽃은 제대로 구경도 하지 못했지만, 대신 남쪽에서 평소보다는 조금 일찍 꽃구경을 했으니, 그것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아아 벚꽃 새해 - 올해가 이제 막 시작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