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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Aug 14. 2018

추억 보정


'애교심'이라고는 1%도 없는 나지만, 그래도 가끔 대학 시절을 되돌아보면 이상하리만치 그리워진다. 아침이면 꾸역꾸역 높은 계단을 올라가며 "왜 이렇게 쓸데없이 학교를 높은 곳에 지은 거야?" 투덜댔지만, 해가 저물어갈 때쯤 그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는 길이 좋았다. 늦으면 밥도 못 먹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해서 매번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그 계단을 서둘러 내려갔던 기억뿐이지만, 아주 가끔 그 계단을 천천히 내려갈 때면 괜히 마음 한 구석이 따뜻했다. 졸업을 앞두고 '김연수 작가의 세계관과 소통'에 대한 논문을 쓴답시고 뻔질나게 도서관을 드나들며 김연수의 책을 실컷 읽었던 기억은 지금 떠올려봐도 행복한 시절이었다, 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마음 한 켠에는 "졸업하고 뭐 하지?"라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수업이 끝난 오후 시간을 오롯이 내게만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 


그러니까, 이제는 다시 오지 못할 시절.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도 많던데…. 난 무지하게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이다. 늘 옛날을 꿈꾸고 돌아가기를 바라는 사람. 내게는 추억 보정이 엄청난 효과가 있어서, 아무리 싫었던 시절도 어느새 파스텔톤 기억으로 변질되어 있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해서 그런가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생각해보면 옛날보다는 아주 조금씩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고, 지금 난 충분히 행복한 걸. 아마 이건 죽을 때까지 날 괴롭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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