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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진 Jan 12. 2017

쏜애플, <서울병> - 그 가닿지 못함에 대하여

쏜애플, <서울병>



개인적으로 앞뒤 재지 않고 빠져드는 주제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하나는 원죄와 복수라는 축이고, 나머지 하나는 소통의 불능, 부재다. 깊고 어두운 심연으로 빠뜨린다는 점에서 두 주제는 매우 두렵지만서도 매혹적이다.


하나의 연작시를 연상케 하는 쏜애플의 <서울병>은 그야말로 '병(病)'에 대한 이야기다. 이 병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온전한 정신적 고통이다. '허우적대다가 건져 온 진심들은 재가 될 뿐', '백 년도 살지 못할 몸뚱이, 그보다 먼저 썩을 마음들' (한낮), '한참을 떨어진 것 같은데 바닥은 어디' (석류의 맛), '뼈저리게 난 혼자라는 기분이 들어', '아무나 나의 적막함을 알아준다면 기꺼이 몸과 마음을 다 줘버릴 거야' (어려운 달), '그대는 분명 내가 그토록 알고 싶었던 완전히 사라지는 법을 알고 있어요' (장마전선), '우리는 결국 한 번도 서로 체온을 나누며 인사를 한 적이 없었네' (서울). 다섯 곡의 주인공 모두 외로운 고립에 빠져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러나 서로의 말은 가닿지 못한다. 가닿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뱉는 말들은 얼마나 처절하고, 아프고, 공허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책없는 낙관을 노래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를 한없이 미워하기도 하고, 그 커다란 외로움과 단절을 혼자서 겪어내고 견뎌내기도 하지만, 결국엔 오지 않는 그대를 기다린다. 그것이 설사 '서울'이라는 도시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이 될지라도. 작가 김연수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도 않는 것이다.


내리 열흘 동안 이 앨범을 들으며 지냈다. 개인적으로 근 몇 년 동안 들었던 앨범 중 가장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앨범이다. 그리고 약간 과장을 보태는 것이 허용된다면, 이 앨범의 가사들이 최근에 읽은 그 어떠한 소설 속 문장보다도, 시구보다도 훨씬 낫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아마도 얼마간은, 어쩌면 꽤나 오랫동안 이 지독한 '서울병'을 앓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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