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 Ocean - BIG Naughty
8월의 밤이란 게 보통 그렇다. 열대야에 시달려 끈적해진 머리에서도 열이 나는 듯했다. 불면의 밤을 직감하고 나는 메모장을 열었다. 딱히 큰 뜻이 있거나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고여서 이내 침잠하는 나의 일상에 작은 이레귤러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틴더로 대표되는 소개팅 앱들이 흔하고 흔하다. 어울리는 태그와 한껏 꾸민 프로필 사진을 올려두면 대화가 시작되는 많은 서비스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 거대한 연애시장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남자들의 선호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 또한 훅업만을 위한 만남을 할 만큼 가볍고도 뜨거운 욕구가 있지도 않았다. 그리고 키오스크에서 상품을 주문하듯 누군가를 취사선택 하고 싶지 않았다.
흔히 보이는 그런 말이 있다. 여기서 진심 찾는 바보. 웹과 앱의 세상에서 진심이라는 것을 바라는 것은 바보라는 말. 그들의 말에 일부 동의하면서도 나는 역시나 바보 쪽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새벽 감성 그대로 그리 길지 않은 글을 썼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화를 나눌 사람을 찾는 글이었다. 내 글을 읽지도 않고 Ctrl+C + Ctrl+V 를 할만한 사람도 많을 거라 예상했다. 글의 마지막에 작은 필터링을 남겼다.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서 추천해주고 싶은 노래 한 곡을 적어달라고.
성별이 여자라는 것 만으로 상상보다 많은 연락이 왔다. 나는 마치 HR부서의 인사담당자가 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들이 보낸 자기소개서를 꼼꼼하게 읽었다. 각자 직업이 다양했지만 역시 대한민국의 취업 시장을 혹독하게 겪은 탓인지 두괄식으로 쓰인 메시지가 많았다. 정량적인 부분을 어필하기 위해서인지 숫자로 표기 가능한 나이와 신체 사이즈부터 시작해서 자차 여부와 경제력에 대한 이야기를 제법 상세히 쓴 사람도 많았을 정도.
인성적인 부분을 디테일하게 체크한다며 내가 든 예시에 한국의 주입식 교육의 표상처럼 본문 그대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메시지들은 사실 내게는 조금도 흥미롭지 않았다.
나는 메시지의 가장 아래로 내려가 추천한 노래들을 찾아보고 모르는 노래면 가사를 꼼꼼히 보았다. 일단 적어 보내지 않은 사람들은 서류 탈락이었다. 그런 이들은 열이면 열, 자신의 성적 욕망을 거울처럼 비추었다. 그렇게 30 퍼가 넘는 사람들이 추려내고 나서 메시지를 주의 깊게 읽어보니 각자의 유형이 있었다.
잘 아는 노래가 없다며 적당히 예전에 들었을 법한 곡을 써 보낸 유형.
플러팅을 위해 여자들이 좋아할 법한 적당한 사랑 노래 등을 선택한 유형.
본인이 문화에 조예가 깊고 취향에 독특하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정말 생소한 곡을 설명과 함께 보낸 유형.
극소수의 나와 비슷한 음악 취향을 가진 유형.
노래 추천과 본문을 유심히 읽으며 나는 그들의 인물상을 그려보았다. 어떤 단어를 쓰는 사람인지,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을지, 대화의 핏이 맞을지를 생각한 다음 몇몇과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잘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작든 크든 인연을 맺는다는 것은 내게 너무 깊은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올린 지도 일주일 가량이 지났다. 의미 없는 광고문자 같은 메시지들에도 지치고 대화를 시작했던 사람들 중에 피로감이 느껴지는 사람과는 대화를 중단했다. 이제 더는 무의미한 시간 낭비를 말아야겠다 싶어 글을 지우러 접속하니 한 통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플레이리스트 추천에 BIG Naughty의 Frank Ocean을 써 보낸 그 메시지는 아주 길지는 않았지만 정갈했고 조금 풋풋한 느낌이었지만 진중한 것이 마음에 와닿았다. 메시지 확인 시점이 새벽이었기 때문에 카카오톡에 아이디를 추가하고 인사를 하나 남겼다.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 내일 이야기하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확인하니 톡이 와있었다. 내가 톡을 보낸 시간보다 더 늦은 시간에 답이 왔었고 서로 좋은 아침에 되었으면 좋겠다는 새로운 톡도 있었다. 좋은 느낌의 대화와 함께 우리는 시간을 조율해 그다음 날 얼굴을 보기로 했다.
You're a lot for me girl 너는 내게 너무 멋진 사랑이었던 거 같아 아마 그랬던 거 같아
You're a lot for me girl 너는 내게 너무 멋진 사람이었던 거 같아 아마 그랬던 거 같아
난 너를 보고 있는데 너도 날 보고 있니 지구 반대편에서도 내가 보고 싶니
잘 살고 있니 아님 못 살고 있니 혹시 내가 보고 싶어서 막 울지는 않니
난 네게 모든 걸 줬는데 너는 떠났고 난 너 없이도 살아가는 법을 배웠어
난 네게 전화했었는데 너는 꺼놨고 나 혼자 기억들을 데웠어
Oo I'm alright Just live your life Or be my wife Just what u wanna be
Oo I'm alright Just live your life Or be my wife Just what u wanna be
These bitches want Nikes They looking for a check
Solo solo solo solo Solo solo solo solo
These bitches want Nikes They looking for a check
Solo solo solo solo Solo solo solo solo
네가 떠난 그날 밤하늘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어 우리가 다시 만나도 사랑을 하게 될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널 보내주는 것 그것 말고는 답이 없음을
널 보내지만 널 보내지만 내 마음은 보내지 마 보내지 마
내 말은 내 마음이 마음 같지 않아 많이 망가졌어 아직 너를 못 잊었어
Oo I'm alright Just live your life Or be my Valentine Just what u wanna be
Oo I'm alright Just live your life Or be my Valentine Just what u wanna be
You're a lot for me girl 너는 내게 너무 멋진 사랑이었던 거 같아 아마 그랬던 거 같아
You're a lot for me girl 너는 내게 너무 멋진 사람이었던 거 같아 아마 그랬던 거 같아
- Frank Ocean
약속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홍대 1번 출구 앞에서 연락이 왔다. 어떤 옷을 입고 계시냐는 말이었다. 연청진과 초록색 핸드백을 메고 있다고 답하자 금방 백팩을 멘 한 소년이 다가왔다. 다 큰 성인에게 소년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조금 우습지만 첫인상이 딱 그랬다. 대학생답게 무신사의 인기 브랜드인 커버낫 상의와 명품을 잘 모르는 나조차도 알아볼 수밖에 없는 구찌 벨트. 그 미묘하게 언밸런스한 조합에, 아무리 많이 잡아봐야 고등학생 내지 대학 신입생 같은 하얗고 보드라운 얼굴의 소년.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이 아주 예쁘다고 나는 생각했다.
카페로 가서 조용한 자리를 잡아 대화를 나누었다. 나 역시 샐러던트라 두 학기 정도를 남겨 둔 대학생이라 전공에 대한 이야기로도 대화는 쉬이 이어졌다. 3시간쯤 서로의 가치관과 컬처핏, 인간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거의 비어있었던 카페는 어느새 사람들로 들어차고 주변은 시끄러워졌다. 나직해서 주의 깊게 들어야 하는 목소리를 가진 상대방 역시 이런 분위기를 좋아할 것 같진 않아 일어나자고 권했다. 카페 밖으로 함께 나왔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가 내게 말했다.
"저녁 함께 드실래요?"
"그럴까요?"
만난 장소에서 15분쯤 걸어 한 식당에 들어가서 밥을 먹으면서 대화는 이어졌다. 조금 긴장이 풀린 건지 텐션이 약간 높아지자 진중한 대학생에서 그 또래의 대학생 느낌이 났다. 편하게 말을 놓고 밥을 먹었다. 밥을 천천히 먹는다고 먹어도 먹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식당에서 나와서도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카페를 이미 다녀와서 다시 가긴 애매한 느낌이라 근처 벤치에 앉았다. 연남동은 유동인구도 많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앉을만한 곳이 아주 많았으니까.
"오늘 만나서 정말 좋았어."
"응, 나도 누나를 만나서 좋았어."
"그러게."
"그래서 말인데 나는 누나와 더 가까워지고 싶어."
"응..."
그는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하얀 손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악수를 했다. 굳은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말랑하고 따듯한 손이었다. 온기에 마음이 간지러웠다. 아직 덜 자란 소년 같으면서도 단단함이 느껴지는 사람이란 게 좋았다. 그럼에도 꼬인 곳 없이 청량한 느낌이 좋았다.
집에 돌아와 서로의 무사 귀가를 알리는 통화를 했다. 하루 사이에 많이 편해진 목소리가 귓가를 톡톡 두드렸다. 몇 시간이나 이야길 하고 돌아왔는데도 아직도 할 말이 남았다는 게 신기했다.
- 집에 와서 보니 누나 향수 냄새가 뱄어.
그때 같이 밥 먹자고 한 건 조금 의외였어.
- 누나가 집에 가려는 건지 알았어. 그래서 마음이 급해져서 용기 냈던 거야.
시끄러운 거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랬지.
- 그런데 잘한 일 같아.
첫 만남으로부터 4일 뒤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나는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책 한 권을 샀다. 안 하던 짓 하니 살짝 재밌어졌다는 제목의 책이었다. 이 사람과의 만남이 이번에 끝이 나거나 혹은 아주 긴 시간으로 이어져도 기억의 색인을 남겨두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생각했을 때 이 8월의 작은 이레귤러가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길 바랐던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각자 다른 두 세상이 만나 세상이 더욱 넓어지는 일. 그렇게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로 우리는 넓어진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개인적인 서사들을 함축하고 결과만 이야기해보자면 이 2주간의 짧은 이야기는 허망하게도 바로 끝나버렸다. 진심이란 건 아주 작고 귀한 것이라 흔히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생각보다 마음을 많이 다쳤다. 침묵으로 마음을 닫아버린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제법 긴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안녕하세요로 처음 시작된 이야기가 최소한 잘 지내라거나 안녕하길 바란다는 말로 맺길 바라기에 보내 봐.
글쎄... 지금 내가 이런 걸 보내는 게 오히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네게 잠시라도 좋지 않은 순간이 되는 것이 우려되긴 하지만 조금 긴 인사를 하고 싶었어.
네가 말한, 그리고 내가 분석한 너는 투명한 사람이니까 이유가 있을 테니까 너의 답을 기다리기도 했어. 물론 그건 지금도 유효해.
단지 침묵이 길어진다는 건 기다리는 사람의 입장이 생기게 되고 답이 없는 사람도 일부분 부담을 지게 되는 거니까 그러길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 나의 말들이 조금 이해하기 쉬울까?
서론이 길었네. 본론을 이야기한다면 나는 조금 아쉬워. 그저 짧은 말이면 되지 않았을까? 싫은 부분이 있었다던가, 맞지 않는 것 같다던가. 어쩌면 넌 다정한 사람이라 그런 말이 어려웠던 걸지도 몰라. 타인을 상처 주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사실은 침묵이 답이었던 걸 지도 모르지. 내가 눈치 없이 혼자서 추측하고 기다린 걸지도. 그래서 확실히 하고 싶어서.
우리가 스친 건 삶의 아주 일부지만 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너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했고 역시 이건 앞으로도 그럴 거야. 10년 뒤엔 원하는 모습대로 되어있길 바라. 현실성 없는 소망이었지만 제법 멀리 서든 생각보다 가까이서든 그 순간을 보고 싶었어.
짧은 시간이라도 너와 친밀한 관계로 지내고 싶었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을게. 같이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았고 시험공부도 해보고 싶었어. 너무 애 같은 마음이었을지 모르지만.
건강 잘 지켜가길 바랄게. 알아서 잘할 사람이니까 걱정은 안 하지만 그래도 건강하길.
그래도 꽤 오래 네 이름을 떠올리면 조금 마음이 아플 것 같긴 해. ○○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좋았었거든. 처음 봤을 때부터 예뻐서 유난히 눈이 가던 네 눈처럼. 나직해서 주의 깊게 들어야 해서 더 좋았던 목소리처럼.
나는 널 만나서 구겨지지 않고 자랐을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어. 조금 더 남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상냥하게 대할 수 있는 나를 떠올리게 해 주었어.
넌 내게 그런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아. 그런 기억을 준 것에 대해 고마워. 너에게 나도 나쁘지 않은 기억이었으면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뭔가를 전해주진 못했던 것 같아서.
언젠가 생각이 난다면 그래도 연락이 오길 바라는 게 솔직한 마음이야. 어떤 사이든 상관없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라.
안녕, ○○아.
이 메시지에 대한 대답은 2주 뒤에 사라진 1 밖에 없었다. 나는 살다가 가끔씩 이 이레귤러를 떠올렸다. 친구가 언제 적 ○○이냐고 타박하면 눈이 참 예뻤어하며 적당히 웃겨 넘겼다. 짧든 길든 늘 이별이 슬픈 것은 서로 좋은 마음에서 했던 약속들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그 순간인 것 같았다. 마음속의 영구결번처럼 나는 가끔 그의 이름을 되뇌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7월의 초입, 폰 스크린에 ○○이라는 글자가 떠올랐다. 받지 않자 한번 더 걸려 온 전화를 보며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내 무응답에 마음이 급했던지 메시지가 왔다.
- 혹시 예전에 잠시 만났던 ○○이라고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