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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초록 Nov 16. 2024

좋아하면 울리는

나는 구겨지지 않을 거야

나의 엄마는 지독한 회피 성향과 함께 폭력성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도, 엄마가 되는 것도 처음이었고 당시 엄마의 나이는 겨우 20대 중후반. 어느 날 갑자기 정신 차려보니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는 애가 있었다고 했다.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고 나는 독립심이 강하고 고집이 센, 소위 기가 센 아이였다.


엄마는 이런 내가 그대로 자라면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거라 생각했고 그 기를 꺾어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다. 평범한 한국 여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내 성격은 순탄치 않았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 같았다. 적극적이었고 자기주장이 강하고 제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부모님이 맞벌이였기 때문에 나의 주 양육자는 할머니였고 우리 집에 귀한 열 살 터울 늦둥이 아들이 태어나면서 자연스레 장녀가 되었고 양육자들의 관심에서 밀려났다. 모든 것이 아들 위주가 되었고 고작 초등학생이던 나에게도 육아의 일부가 따라왔다.


동생이 태어난 지 100일을 넘겨 목을 가눌 수 있게 된 이후로 소분해 놓은 분유통을 꺼내고 물을 끓여 차가운 물 분유를 섞어 손등에 떨어트려 온도를 잰 다음 애를 안아서 밥을 먹이고 등을 만져 트림을 시키는 것도 내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나도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일 뿐이었지만 동생이 태어난 이상 나는 부 양육자가 되었던 것이다.


양육의 책임 외에도 힘든 것은 많았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어머니를 미워했다. 그로 인해 나의 부모님은 다툼이 잦았고 집안의 물건이 파손되거나 고성이 오가는 일은 흔했다. 동생이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죽음이란 걸 생각해 보았다. 스스로도 그 생각이 우스웠다. 고작 10살에 죽음을 생각하다니. 나는 조금만 더 살아보자며 그런 나를 버티기로 했다.



그 후로는 언제나 버팀의 연속이었다. 어떻게든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공부를 잘하려고도 노력해 보았고 어느 정도 성과도 보였지만 엄마는 칭찬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학업에도 흥미를 잃었다. 학업이라는 장기적인 플랜에서 아이에게 와닿는 보상은 사실 부모님의 인정이 전부니까.


설상가상 집이 어려워지고 부모님이 따로 살게 될 때쯤부터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성인이 되는 과정 동안 싫든 좋든 자아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에게 베푸려고 애쓰면서도 기댈 줄은 모르는 사람으로 자랐다.  내 모든 세상이었던 나의 엄마도 우리가 서로 각자도생 해야 된다고 자주 말했고 나도 그에 동의했던 만큼 무슨 일이 와도 기어코 내가 수습하고 어떻게든 책임져야 하는 삶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는 비혼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혼에 처참하게 실패한 가정에서 나온 산출물인 내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밝고 쾌활하게 행동해도, 열심히 무언가를 해도 내 눈이 어딘가 그늘져 있다며 평가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자기 개방성이 높았던 탓에 나는 내 잘못이 아닌 일들에 대해서 나의 불행을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그런 나와 거리를 두었다. 작은 불행에는 모두가 위로를 건네고 마음을 써주지만 큰 불행을 보면 근원적으로 회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분리되는 경험을 여러 번 하고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나의 약점이 될 것 같은 이야기를 말하지 않게 될 때쯤 그를 만났다. 그는 그런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서로 디테일은 많이 다르지만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고 애써 온 그 삶을 보니 나의 내면아이가 떠올랐다.  막상 그는 내가 치부가 있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길래 걱정이 되면서도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서툴렀던 그에게 나는 천천히 자라도 좋다고 말했었다. 어린 날의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받고 싶은 걸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려고 하니까. 나는 그를 만나고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당신도 나도 만나기 전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어보자고 말하려면 내가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겼으니까.



만약에 순수했던 내가 가장 이상적인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 적 있어?

나에 대한 작은 칭찬들이 모여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그렇게 자라서
어느새 고등학생이 된 당당하고 깨끗한 마음의 나.
난 그 모습이 진짜 나라고 믿어.

사람들이 와서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구기고 발로 차고 그러면 내 모습이 일그러지잖아
그러면 나는 자꾸만 펴는 거야.
나의 진짜 모습이 구겨지지 않게.
다른 사람들이 마뜨린 모습대로 살지 않게.
원래 내가 되었어야 할 모습으로.

나는 구겨지지 않을 거야.


좋아하면 울리는 - 천계영


나는 형편없이 구겨진 나를 자꾸만 펴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그 역시 한 귀퉁이라도 자신을 펴나가갈 바랐다. 그것은 단지 내 욕심일 뿐이고 그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만난 이유는 이런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의 결핍에 이끌려 만난 거라 해도, 언젠가 모든 것을 펴는 데 성공하여 결핍을 극복해 낸 우리가 각자 다른 길을 가더라도 결과만큼 과정을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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