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신과 나눈 이야기 2권 | 닐 도널드 월쉬
2권에 대해서 글을 3편이나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앞에 두 편을 읽어보니 2권에 대한 생각이 많이 정리된 느낌입니다. 사실 이번이 2권 재독인데, 밑줄까지 그어가며 읽은 내용이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게 다가왔어요. 머릿속이 깡그리 지워진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발췌하고 기록을 남겼으니 나만의 기준으로 3권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든 순간에 '전체'와 모든 사람과 모든 장소와 모든 사물과 너의 '신성한 연결'을 느끼고 표현하라."는 문장을 읽었을 때,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마음의 평화이겠구나 했습니다. 요즘 제 머릿속은 전쟁 중이거든요. 어떤 상황에 대면했을 때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분석하고 결과를 시뮬레이션해봅니다. 결국 결정을 내리고 행동으로 옮기기도 전에 지쳐버립니다. 그러니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 그것이 내가 원한 결과였다고 해도 - 피곤한 상태로는 만족하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후회하거나, 뭔가 잘못됐을 때는 쉽게 분노합니다. 분노가 가라앉을 때 잠깐 한숨 돌리는 듯하지만, 곧 다른 상황과 사람들과 사건들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지금 제 화두는 '평화롭고 싶다'에요. 그래서 눈이 번쩍 뜨였지만, 동시에 '어떻게?'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 될까요? 물론 도움이 되겠지만 하루 종일 눈을 감고 명상을 할 순 없습니다. 또한 우리의 '평화'는 주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깨어지니까요.
자신에 대해 겸손하게 말하라. 남들이 네 고귀한 진실을 허풍으로 잘못 받아들이지 않도록.
부드럽게 말하라. 남들이 네가 단지 주의를 기울여주기만 요구한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온화하게 말하라. 모두가 사랑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터놓고 말하라. 누구도 네가 뭔가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솔직히 말하라. 누구도 너를 오해하지 않도록.
자주 말하라. 네 말이 참으로 실행될 수 있도록.
존중하면서 말하라. 누구도 굴욕감을 느끼지 않도록.
사랑으로 말하라. 모든 음절이 치유하는 힘을 갖도록.
- <신과 나눈 이야기 2권> p. 300~301
이 부분을 발췌해 한 줄씩 타이핑하면서,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저는 '나의 평화'가 다른 사람에 이해 '깨어진다'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평화(또는 불화)의 시작은 나였음을, 나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평화로워질 수도, 그 평화가 쉽게 깨어질 수도 있는 거였어요. 겸손하게, 부드럽게, 온화하게, 터놓고, 솔직히, 자주, 존중하면서, 결국 사랑으로 말할수록 나의 평화는 이어질 수 있습니다.
원하는 도움을 제공한다는 것이, 의존을 낳지 않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이, 곤경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신은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못한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해준 것이라. (<마태복음> 25:31~40- 옮긴이) - <신과 나눈 이야기 2권> p. 305
물론 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천국 가기 위해서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에게 해준 것, 그것은 결국 나에게 한 것이죠. 어떻게 이 논리가 성립되는지를 볼까요? 곤경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닥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항상 도움을 주는 이가 있다면, 곤경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되지만, 아무도 돕지 않는다면 그 어려움과 고통은 혼자 이겨내야 하는 몫이 됩니다. 그런데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즉, 내가 곤경에 빠진 이를 모두 돕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나는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에도 대비를 한 셈입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시죠?
알고 있다. 나도 너를 사랑한다.
이 말이 얼마나 하기 어려운 말인지 알아서, 이 장을 펴놓고 잠시 멍하게 있었습니다. 아무한테나 아무에게나 쉽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지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든 이 말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 세상은 무척 아름다울 거라 생각했습니다.
빈곤과 불평등, 기후와 환경 문제, 갈등과 분리, 살인과 폭력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우리 사회 전반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우리가 아무것도 숨길 게 없을 때 해결될 수 있다는 건 너무도 당연해 보입니다.
만인의 생존과 만인의 평등한 이익과 만인을 위한 행복한 삶의 제공이 너희 사회의 주요 목적과 목표가 될 때(진실로 계몽된 모든 사회가 그러하듯이), 보안과 은밀한 거래와 탁자 밑 조작과 감출 수 있는 화폐에 대한 너희의 필요도 사라질 것이다.
너는 그런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정도가 덜한 불공정과 불평등은 말할 것도 없고, 좋았던 구식 부정부패들을 얼마나 많이 제거할지 실감할 수 있겠느냐?
여기서의 비결, 여기서의 슬로건은 투명성 visibility이다. - <신과 나눈 이야기 2권> p. 319
어제 아침에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왔는데요. 핵폭탄 개발 후 오펜하이머 또한 서로 감출 것이 없을 때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국제적인 상호협력을 통해 무분별하고 무제한적인 군비 경쟁을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 물론 그의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기는커녕, 그를 소련과 내통하는 스파이로 의심을 받고 보안 인가가 취소되기에 이릅니다. 그 이전 핵폭탄 개발 과정에서도 정보와 지식의 공유를 통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과학자들에게, 맨해튼 프로젝트의 정보 보안을 위해 '구획화'를 강요하는 군인들과 이를 본능적으로 거부해 계속 규정을 어기는 과학자들의 갈등이 눈에 뜨이는데요. "잃거나 얻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p.321)"면 문제는 뒤틀려지고, 그렇게 돌아가다 보면 문제는 점점 더 커지고, 우리는 문제 해결점에서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상 전체가 이런저런 투쟁 단계 속에 있는 건 위대해지려는 너희의 현재 동기가 세상이 제공해야 할 모든 것을 쌓아두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인구의 막대한 부분들은 지금도 여전히 단순한 물질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걱정스러운 순간들, 정말적인 조치들로 가득하다. ... (중략) ... 이보다 수는 적지만 자신들의 삶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생존토대들에 조리 있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투쟁한다. 어느 정도의 안정, 소박하면서도 품위 있는 가정, 더 나은 내일 같은 것들을 더 많이 마련해 두기 위해. ... (중략) ... 훨씬 더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들이 요구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사실 앞의 두 집단이 지금 요구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하지만 흥미 있는 건 이 마지막 집단에 속한 사람들 다수가 여전히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신과 나눈 이야기 2권> p. 341
이 책이 1997년에 쓰였으니, 26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네요. 아니 더 강력하게, 더 빠르게 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산층은 사라져 가고, 부의 양극화는 더 심해졌으며 젊은 세대는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족을 이루는 결혼과 출산 등 더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지요. 매년 수치적으로 성장해야만 하는 경제와 기업들은 더 많이 쌓아두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요한 하리의 <도둑맞은 집중력>에도 나오는 내용인데, 경제 성장을 하려면 더 많은 소비가 이루어져야 하기에 사람들이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도록 알고리즘은 작동한다고 해요. 만약 인류가 1-2시간씩 잠을 더 자게 되면 경제가 휘청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 사회는 도대체 무엇을 위한 사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평생 구하고, 애쓰고,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세속의 것을 마련하는 데 있었지만, 이제는 그 이유가 하늘의 것을 체험하는 데 있다. 예전에는 주요한 관심이 몸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주요한 관심이 영혼에 대한 것이다. 모든 것이 움직이고 모든 것이 변한다. 삶의 목적이 바뀌고, 따라서 삶 자체도 바뀐다. - <신과 나눈 이야기 2권> p. 342
정말 이렇게 바뀔 수 있을까요? '나 혼자만 바뀐다고 되겠어?'라는 생각에서 '나 하나 바뀌기도 힘들구나!'라는 생각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내 존재의 미미함에 무력감을 느끼며 때론 애쓰기보다 멈추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 또한 나의 선택이겠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거나, 작은 것이라도 하루하루 변화를 만들어가거나. 책을 읽었다고 변화가 저절로 오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책만 읽고 행동하지 않았다고 잘못인 것도 아닙니다. 그 선택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어야겠지요.
신은 '기회의 평등'을 강조합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평등'하게 하나의 기준에 부합해 사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기준에 '맞게'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할 기회가 똑같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죠. 이 장의 내용은 근래 많이 언급되고 있는 '기본소득'의 개념과도 비슷합니다. 이미 '충분히 있기' 때문에, 누군가 더 노력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듯 먹고살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한한 자유롭게 하는지 모릅니다.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사람들까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는 '스트레스', '번아웃증후군', 무한히 비교하고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경쟁심리' 같은 것은 아예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벌기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더라도요?
이런 것들을 굳이 벌어야 한다는 너희 사고방식이 빚지지 않고 살아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너희 사고방식의 토대다. 하지만 너희가 빚지지 않고 산다고 해서 신의 은총을 입을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너희는 이미 그곳에 있기에. 너희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니. 그것은 너희가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조건 없이 주는(다시 말해 조건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울 때, 너희는 조건 없이 받는 법을 배우리라.
- <신과 나눈 이야기 2권> p. 345~346
이것이 어떻게 구현가능할까라는 질문에 신은 조건 없이 주고, 받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요. 저는 문득 일전에 본 '긴 숟가락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조건 없는 사랑은 똑같은 상황을 사랑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분리가 아닌 하나, 그리고 충분히 있다는 개념만 온전히 이해한다면 세상은 단숨에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쉽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모든 것이 '자본', 내가 얼마를 가졌나 와 가져야 하나에 대한 논리로 움직이는 한 변할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수천 년에 걸친 긴 역사에 비해 자본주의 역사는 짧지만, 우리는 이 논리를 절대 변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신봉하고 있죠. IT기술의 발달로 세상이 점점 더 빠르게 바뀌면서 우리는 더욱 관성에 젖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말하려는 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투쟁은 지금껏 쉬지 않고 계속되어 왔고, 너희 행성에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박애주의적 이해가 아니라 경제적 이해가 세상을 움직여가는 한,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몸이 인간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고 있는 한,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 <신과 나눈 이야기 2권> p. 379
하지만 이 의식 변화를 어떤 사회적 차원의 큰 변화로만 보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물리적 가치에 대한 개인의 생각의 변화도 한 몫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를 들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 - 예를 들어 명품 가방, 맛집 인증, 해외여행 등 - 만 줄여도 우리는 그 돈을 벌기 위해 스스로를 닦달하지 않아도 됩니다. 물론 소비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에요. 그걸 하면 행복하고, 못하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소비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나로서 행복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면,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생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변화는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너희는 자신을 믿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너희의
모든 힘을 되찾을 것이다.
이 문장을 몇 번을 읽었는지 모릅니다. '너희가 자신을 믿으면 모든 힘을 되찾을 것이다.'는 뜻이죠. 2권에 대한 세 번째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어떻게 이 글을 마무리하게 될까 궁금했습니다. 이미 3권을 읽기 시작했는데, 2권에 대한 글을 마무리할 수 없었죠. 개인을 넘어 사회적 차원의 큰 이야기들이지만 '이렇다더라' 식의 글로 마무리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3권을 다 읽은 오늘에야 2권 리뷰를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오늘의 결론은 나를 믿고, 결국은 우리를 믿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 전반에 걸친 조직적인 변화는 개인이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저는 17년간 광고기획자로 살아오면서, 전략과 크리에이티브의 조율, 클라이언트와 제작팀의 조율, 프로젝트 스케줄의 운영,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 간 팀워크 형성 등 '효과와 효율'에 집중해 왔습니다. 광고캠페인은 결코 한 명의 힘으로 만들어질 수 없기에 팀워크가 중요하다고 말해왔지만, 저는 철저히 사람들을 나와 '분리된 존재'로 보고 이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효과적으로 움직일 것인가에 집중해 왔지요. 나름 문제없이 잘해왔다고 자부하지만, '하나로서의 믿음'이 없었기에, '문제없이(사고 없이 무탈하게)' 일이 되게끔 혼자 안간힘을 쓰다 번아웃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두 번 다시 너희 자신을 서로 분리된 존재로 보지 말며, 내게서 분리된 존재로 보지 마라. 두 번 다시 누구에게든 완전한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하지 말며, 두 번 다시 나에 대한 너희의 가장 위대한 진리보다 못한 것을 받아들이지 마라. - <신과 나눈 이야기 2권> p. 402~403
지금은 나와 일하는 사람들, 나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게서 분리된 존재로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탓하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나도 다른 사람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듯이, 그도 그럴 수 있음을 떠올리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악의'가 아닌 '호의'로 움직이며, 그것을 비틀어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믿으려고 합니다. 물론 점점 각박해져 가는 세상에서 의심과 불안은 그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지요. 이러한 의심과 불안이 멈출 때 나는 더 강해져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