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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LAXY IN EUROPE Aug 18. 2023

허상을 좇는 슬프고 아름다운 삶

[소설] 위대한 개츠비 |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는 소설이고 영화이지만, 너무도 우리 삶과 닮아 있습니다. 특히 영화 속 미장센은 제가 본 영화 중에 단연 으뜸으로 여겨질 만큼 화려하고 정교하며 주인공들의 성격과 감정, 배경이 되는 시대상을 잘 반영해 그 속에 펼쳐진 화려한 세상으로 빠져들게 하는데요. 작가인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삶과 시대적 배경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들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 사방을 가득 채운 꽃들

우리의 삶은 무척 아름답죠. 누군가는 삶이 영원하지 않고 끝이 있어서 아름답다고 하더군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알 수 없어 신비롭고, 그렇기에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평안한 삶을 바라지만, 누구나 서로 다른 굴곡을 안고 살아가는데요. 그 굴곡의 깊이와 높이, 폭과 진동이 모두 다르기에 각자의 삶은 다채롭고 아름답습니다. 어려선 모든 영화가 해피엔딩이길 바랐지만, 어떤 결말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 책으로 읽고, 영화로 보고, 다시 읽는 <위대한 개츠비>가 제게는 또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 리뷰는 여기서 보실 수 있어요.)


존재하지 않는 허상 - Green Light

그린라이트를 향해 손을 뻗는 개츠비

손에 닿을 듯 선명하게 보이지만, 강 건너편 닿을 수 없는 곳의 초록 불빛.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뿐 아니라 등장인물 모두는 자신만의 '초록 불빛(Green Light)'을 좇고 있습니다. 개츠비는 이미 끝나버린 데이지와의 사랑을, 톰은 남의 부인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주는 스릴을, 데이지는 배신한 남편에 대한 용서(또는 현실부정)를 통해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동부에서 성공하고 싶은 닉도, 골프챔피언이란 타이틀을 가진 조던도, 개츠비의 파티에 오는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 끊임없이 무언가를 좇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옛 세계에 대해 상상하면서, 나는 데이지의 집 선창가에 빛나던 초록 불빛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개츠비를 그려보았다. 그 순간 그가 느꼈을 경이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이 푸른 잔디밭에 도달하기까지 그는 참으로 먼 길을 달려왔다. 꿈이 너무도 가까이 다가왔기에 그것을 놓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을 것이다. 그는 그 꿈이 이미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도시 저 너머 거대한 암흑 속 어딘가로, 공화국의 검은 들판이 시커먼 밤하늘 아래에서 출렁대는 그곳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 위대한 개츠비(온스토리 세계문학 002) |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최성애 옮김

처음에는 과거에 집착해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랑을 좇는 개츠비가 안쓰러웠습니다. 저러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을 텐데, 세상에 좋은 여자는 많은데 하는 생각들을 하면서 말이죠. 데이지도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고 믿으려 하는 것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다른 등장인물들을 돌아봐도, 각자 자신만의 초록 불빛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 것 같아서요. 그 모습들이 실제 저를 포함해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자 지난번 영화를 보고 나서처럼 개츠비와 데이지에게 더 이상 훈수를 둘 수가 없었어요.


알아차림 - 닥터 에클버그의 두 눈

우리는 모두 허상을 좇고 있습니다. 삶 자체가 허상이니까요. 과거와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과거와 미래에 기반해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죠. 이것들을 계속 추구해 나가면서 성공과 실패를 겪고, 기쁘거나 좌절하며 살아가는 게 바로 삶이고 어찌 보면 지금 여기(NOW HERE)를 벗어나는 순간 이 모두는 없는 것(NOWHERE)이 되는 것일지 모릅니다.


결국 삶이 허상이므로 우리가 사는 것을 멈춰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이 허상인 줄 알고 좇는 것과 모른 채 좇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삶이 허상이라는 알아차림이 없을 때, 삶은 우리에게 단 하나뿐인, 잘 살아야만 하는, 내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너무나 슬픈 무엇이 됩니다. 과거의 무게를 고스란히 지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한 발짝씩 조심스럽게 헤쳐나가야 하죠.


하지만 허상을 알아차린다면 어떨까요? 이때 재의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광고판, 닥터 T.J. 에클버그의 두 눈이 떠올랐습니다. 그 아래를 지나가는 누구든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지, 그들의 초록 불빛이 무엇인지 다 꿰뚫고 있을 것만 같은 눈, 윌슨은 이를 가리켜 '신은 모든 걸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닥터 T.J. 에클버그의 눈
윌슨의 뒤에 선 미카엘리스는 흠칫 놀랐다. 닥터 T. J. 에클버그의 눈이 이쪽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서히 잦아드는 어둠을 뚫고 나타난 두 눈동자는 창백하면서도 거대했다.
“신은 모든 걸 보고 있다고.” 윌슨이 되뇌었다.
- 위대한 개츠비(온스토리 세계문학 002) |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최성애 옮김

처음엔 섬뜩했어요! 신을 나와 분리된 존재로 생각한다면,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말 그대로 '지켜보고 있다'잖아요??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는 절대적 존재가 나 자신이라면? 나는 삶이 허상임을 이미 알고 있고, 하지만 지금의 나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다면? 두려울 것도 괴로울 것도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쓰다 보니 책 리뷰가 에크하르트 톨레나 <신과 나눈 이야기> 책 속의 영성적 접근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위대한 개츠비> 재독한 제 생각은 이렇게 흘러가네요.


그래서 삶은, 더욱 아름다운가?

제 대답은 '네'입니다. 완벽한 알아차림이 삶의 목표가 아니거든요. 알아차리지 못한 삶도 그 자체로 아름답습니다. 맞고 틀리거나, 옳고 그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파란 하늘이 옳고, 비가 올 듯한 회색 하늘이 그르지 않은 것처럼요. 오후 6시가 아침 8시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듯이 말이죠.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아름다울 뿐입니다. 비가 와서 슬플 수도 있고, 맑아서 슬플 수도 있잖아요?

나는 그를 용서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가 한 행동은, 적어도 그에게는 전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너무도 파렴치하고 추악한 행위였다.
- 위대한 개츠비(온스토리 세계문학 002) |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최성애 옮김

개츠비의 죽음 후 장례를 치르면서 닉은 톰과 데이지에게 무척 화가 났는데요. 다시 톰을 만나고 나서 위와 같이 자신의 감정을 서술합니다. '그의 행동은 전적으로 정당하다'니! 파렴치하고 추악한데 말이죠. 정당하면서도 동시에 파렴치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모두 다른 생각 중인 듯한 닉, 개츠비, 데이지, 톰(좌로부터)

책 마지막 문장을 읽었을 때는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들어가'는 것이 '지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나 스스로 내 삶을 제어하지 못하는 불안한 삶을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소설의 끝을 이렇게 마무리한 것이 이해되지도, 마음에 들지도 않아서 원문을 찾아보기까지 했습니다.

개츠비는 초록 불빛을 믿었다. 그 짜릿한 미래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우리들 뒤로 퇴각한다. 그해 여름, 초록 불빛은 우리 곁을 지나쳐 갔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면 우리는 더 빨리 달릴 것이고, 더 멀리 두 팔을 뻗을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맑은 아침…….
그렇게 우리는 헤쳐 나아간다. 물살을 거슬러 노를 저으며,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들어가며.

Gatsby believed in the green light, the orgastic future that year by year recedes before us. It eluded us then, but that’s no matter ― tomorrow we will run faster, stretch out our arms farther... And one fine morning ―
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

- 위대한 개츠비(온스토리 세계문학 002) |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최성애 옮김

원문의 느낌까지 더해져 마지막 문장의 의도를 해석해 보자면 '이루지 못하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인 것 같아요. 초록 불빛이 더 희미해지고, 만날 수 없는 것이더라도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that's no matter). 우리는 내일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우리는 더 멀리 손을 뻗을 것이니까요.


그러고 나서 언급한 '어느 맑은 아침(one fine morning)은 왠지 죽음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모든 것의 깔끔한 끝인 거죠. 어느 좋은 날 소풍을 끝내고 돌아가는 것처럼, 삶은 아름답게 끝이 납니다. 그래서 그 마지막 날까지 우리는 계속 헤쳐 나아가야(beat on) 합니다. 지금 현재(current)를 거슬러 올라가는 거죠, 끊임없이 과거로 밀려 올라가더라도. 그게 결국은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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