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생각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 말고는 생각할 수 없는 법이니까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고민하지
말고, 그저 대수롭지 않게 ‘오 나는 코끼리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가 있어요. ‘코끼리는 코가 길지, 길면 바나나, 바나나는 맛있어, 맛있는 건 사과인데, 요즘 사과가 너무 비싸…’ 하는 식으로 코끼리 생각에서 서서히 놓여나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집착하지 않고, 내려놓는 거예요.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생각’이라는 일체감을 버리고
생각에 완전히 지배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분노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슬픈 사람은 내가 아니다.
두려운 사람은 내가 아니다.
권태·분노·슬픔· 공포는 ‘나의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단지 마음 상태를 가리키는
지표이며, 늘 가고 오는 것이다.
가고 오는 것은 그 무엇도 내가 아니다
이것들 모두는 내가 아니고 나는 그것들이 가고 오는 “관문”이 된다고 에크하르트 톨레는 말합니다. 그래서 가벼워질 수 있어요. 생각은 내가 아니고, 왔다가도 가고, 가는 듯하다가 또다시 오는 것이기에 내버려 두면 됩니다. 그래서 꼭 내가 옳아야 할 필요도 없고, 내가 다 알고 있을 필요도 없습니다.
모른다는 사실을 마음 편히 수용할 때
이미 당신은 생각을 넘어선 것이다.
그때 개념적 사고를 벗어난
깊은 앎이 당신 앞에 나타난다.
글을 쓸 때, 내가 아는 것들을 알려주겠다 마음먹고 글을 쓰면 생각이 꼬이고, 문장이 복잡해지는 걸 종종 경험했어요. 오히려 그냥 편하게 이런 일들이 있었고, 그 이유는 이런 것인데, 이렇게 대응했다는 식으로 상황이나 사실을 풀어쓰면 글이 술술 잘 써지곤 했습니다. 글이 정말 잘 써질 때는 다 쓰고 나서, 내가 쓴 게 아니라 더 큰 존재가 내 안에 들어와 글을 풀어놓고 간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답니다.
즉, 생각은 내가 아니에요. 그것이 훌륭한 생각이든 잡다한 생각이든 간에요. 그것에 직찹하지 말고, 그것을 나로 만들지 말고 떨어져 볼 수 있을 때 진정한 앎을 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