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기 내가 해야했던 ‘거래'
얼마 전 TV에서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와 개그맨 김수용 씨의 이야기를 보았다. 한 명은 우주의 섭리를 논하는 과학자이고, 다른 한 명은 남을 웃기는 희극인이다. 평소라면 접점이 없었을 두 분이지만, 최근 놀랍도록 비슷한 일을 겪었다. 김상욱 교수는 속이 더부룩해 병원을 찾았다가 심근경색 직전의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김수용 씨는 촬영 중 심장이 멈추는 위급한 순간에 CPR을 받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화면 속 그들은 "죽을 뻔했던" 당시를 회상했고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나의 시선은 조금 다른 곳에 머물렀다. 비슷한 일을 겪은 나로서는 그 생사의 순간보다, 그 이후에 이어질 '살아남은 자의 시간'들이 더 궁금했기 때문이다.
스텐트 시술은 무척 아팠지만, 통증은 서서히 잦아든다. 혈관 내부에 스텐트를 넣은 원인이 콜레스테롤이나 혈전 때문이니, 관련 약들을 의사 지시에 따라 조절하며 먹으면 된다. 시술을 위해 동맥을 뚫었던 손목(또는 허벅지)의 상처도 하루면 아물고, 조금만 조심하면 몸은 이내 예전처럼 돌아온다. 아팠으니 약을 먹고, 조심하며 회복한다는 것. 이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의 불편함이다. 이 정도니 다행이다 싶고, 자칫 큰일 날 뻔했던 것에 비하면 회복도 빠른 편이라 괜찮은 것만 같았다. 적어도 병원 문을 나서고 첫 2주간은 그렇게 생각했다.
가장 먼저 빼앗긴 건 아침의 커피 리추얼(Ritual)이었다. 나는 눈을 뜨면 드립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집안 가득 퍼지는 커피 아로마, 따뜻한 잔의 온기, 그리고 첫 모금의 쌉싸름함. 그것은 단순한 카페인 섭취가 아니라, 아침을 기분 좋게 깨우는 의식이었다. 하지만 약을 먹기 시작하면서 이 의식은 중단됐다. 아침에 일어나면 약을 먹기 위해 식사를 해야 했고, 약을 먹고 나서 1시간 넘게는 카페인은 금지였으니까. 잘 들어가지도 않는 음식을 씹어 넘기고, 미지근한 물과 함께 약을 삼키는 건조한 행위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더 황당한 이별은 '자몽'이었다. 스텐트 시술을 해주신 선생님은 다른 음식들은 적게 먹거나, 가끔 먹거나, 골고루 먹으라고 관대하셨는데, 유독 자몽 앞에서만은 단호했다. 자몽 속의 특정 성분이 내가 먹는 약의 대사를 방해해 약효에 영향을 준다는, 꽤나 과학적이고 무서운 이유였다. 여름날 카페에서 즐겨 마시던 자몽 에이드. 달콤하면서도 혀끝에 남는 그 씁쓸한 뒷맛을 나는 사랑했다. 단조로운 단맛보다 입체적인 그 맛이 좋았다. 그런데 내 심장을 지키기 위해 그 빨간 과일을 영영 포기해야 한단다.
그뿐이 아니었다. 8월에 예약해 둔 위·대장 내시경은 스텐트 시술 직후 출혈 위험 때문에 11월로 미뤄야 했다. 내시경을 하려면 혈액을 묽게 하는 약을 일주일간 끊어야 하는데, 이는 의사가 권하지 않았다. 9월의 다낭 비행도, 연말에 계획한 유럽 여행도 '비행시간'이 문제가 되진 않을지 의사에게 허락을 구해야 했다. 여권을 내밀 듯 내 몸의 상태를 검사받아야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처지. 나는 더 이상 내 몸의 온전한 주인이 아니었다. '환자'라는 라벨이 내 일상의 자유이용권을 제한하고 있었다.
처음엔 억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상실'의 목록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커피 향을 잃었고, 자몽의 씁쓸함을 잃었고, 즉흥적으로 비행기 표를 끊을 자유를 잃었다. 문득 김상욱 교수와 김수용 씨, 그리고 한국에서만 매년 잠실 주 경기장을 가득 채울 만큼 쏟아져 나온다는 7만 명의 스텐트 시술 환자들이 떠오른다. 그들도 나처럼 무언가를 잃었을 것이다. 어떤 중년 남성은 퇴근 후 동료들과 부딪치던 소주잔의 경쾌함을 잃었을 것이고, 사우나의 뜨거운 열기를 즐기던 누군가는 그 개운함을 포기했을지 모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를 번쩍 안아 올리던 할머니는, 무거운 것을 들지 말라는 경고 앞에 그 벅찬 포옹을 내려놓았을 수도 있다.
'포기'라는 단어는 너무 무겁고 비극적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거래'라 여기기로 했다. 나는 자몽 에이드 한 잔을 내어주고, 다시 뛰는 심장을 받았다. 모닝커피의 아로마를 내어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을 받았다. 아무런 제약 없이 떠나는 여행의 자유를 내어주고, 내 몸을 조금 더 세심히 살피며 걷는 신중함을 받았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잃는 게 있으면 반드시 얻는 게 있기 마련이다.
아침에 일어나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커피 향은 없지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물의 감각은 선명하다. 자몽은 먹을 수 없지만, 다른 과일의 단맛은 느낄 수 있다. 생각보다 잃은 것들이 크게 느껴졌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잃은 건 겨우 커피 향이나 자몽이었다. 그 대가로 나는 오늘이라는 삶을 얻었다. 이 정도면 꽤 남는 장사가 아닌가. 조금 불편하고, 조금 심심해졌지만, 그렇다고 못 살 정도는 아니다. 나는 오늘도 내 심장에 박힌 작은 금속 그물망과 타협하며, 밍밍하지만 안전한 하루를 시작한다.
[ 표지 사진: Unsplash의 Zoriana Stakhni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