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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LAXY IN EUROPE Dec 30. 2022

2022년 마지막 읽고 쓰는 즐거움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이어령

고백하자면 저는 이어령 선생님의 책들 중에 제대로 읽은 책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감히 제 인생책이라 이를 만큼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전하시는 (작가는 “피를 토하듯 말을 토했다“는 표현을 썼는데, 열정적으로 광범위한 주제를 커버하시는 말씀을 읽다 보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요.) 생각들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기도 하고, 책을 덮고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한 장 한 장 아껴 읽다가 어느 날 새벽까지 해치워 읽어버렸습니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이어령 저 책표지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소낙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에요.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죽음이 계절처럼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해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이어령 저

어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죽기 전에 ’나‘에게 쓸 한시가 아쉬운 마당에 선물을 돌려주겠다니요. 암투병으로 극한의 고통이 온몸을 쓸고 지나가고 잠도 편안히 잘 수 없는 상황에서 말이죠. 제 의문에 선생님은 이렇게 설명을 해주셨어요.

“실제로 위기 상황에 닥치면 인간은 두 가지로 딱 갈라져. … 양극으로 나뉘지. 고난 앞에서 네거티브로 가면 인간은 짐승보다 더 나빠져. 포지티브로 가면 초인이 되는 거야. 인간이 저렇게 위대해질 수도 있구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이어령 저

이어령 선생님 당신 또한 암선고를 받고 난 후 “이전의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내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는데요.

“… 뒤늦게 생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네. 모든 게 선물이었다는 걸.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다는 말은 목사님 같은 소리가 아니야.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히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내가 벌어서 내 돈으로 산 것이 아니었어. 우주에서 선물로 받은 이 생명처럼,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생각한 게 다 선물이더라고.”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이어령 저

모든 것이 선물이었음을 깨달았기에, 나 또한 이를 선물로 돌려주겠다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어령 선생님처럼 대단한 사람만 깨달음을 얻고 초인이 되는 걸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이러한 경지에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요?


존재했어?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자 머릿속에 떠오른 선생님의 일갈이었습니다.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라는 질문 속에서 저는 ‘어떻게’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길 잃은 양은 자기 자신을 보았고 구름을 보았고 지평선을 보았네. 목자의 엉덩이만 쫓아다닌 게 아니라, 멀리 떨어져 목자를 바라본 거지. 그러다 길을 잃어버린 거야. 남의 뒤통수만 쫓아다니면서 길 잃지 않은 사람과 혼자 길을 찾다 헤매본 사람 중 누가 진짜 자기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겠나. 길 잃은 양은 그런 존재라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이어령 저

정답을 좇지 않고 나의 생각으로 갈 길을 가면 그러다 길을 잃어도 실패가 아니며, 다시 돌아와 양 떼에 합류해도 그것은 아예 길을 떠나지 않은 것과 비교해 늦었거나 제자리인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이 고통 속에서도 나의 결정에 의해 초인이 될 수 있는 힘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Thanks to Jill Heyer @jillheyer for making this photo available on Unsplash  https://unsplash.com/ph

즉, 누구나 초인이 될 수는 있으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초인되는 법은 없습니다. 똑똑하거나 선하거나 신심(信心)이 깊거나 등 특정 조건을 충족하면 초인이 된다고 정해져 있지 않은 거죠.

 ”자신을 초월한 영성은 궁극적으로 몸의 바깥에서 온다네. 사고의 바깥에 있지. 다른 세계야. 기도를 통과해서든, 고통을 통과해서든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힘이라는 거야. 그래서 누가 짐승이 되고 누가 초인이 될지는 몰라. 예측할 수 없네. 오직 겪어야 알지. 백두산 물이 두만강이 되고 압록강이 되듯 0.1초 차이로 벌어지는 일이거든.“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이어령 저

이를 선생님은 영성은 ”바깥에서 온다“고 설명하시는데요. 결국 네가 잘났듯 못났듯 니 책임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시는 것 같아 위로가 되기도 했고, ‘아, 그래서 선물이구나!’ 하고 선물의 의미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우린 그 선물을 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요?

Thanks to Kira auf der Heide @kadh for making this photo available on Unsplash  https://unsplash.com
“영성이란 말이지…… 뭔가를 구하고 끝없이 탐하면 자기 능력을 초월하는 영감이라는 게 들어오는 거야. 이런 얘기하면 미쳤다고 할지 모르겠네만, 책 쓰는데 영 글이 안 써지면 마감 직전에 아무 책이나 들춰보거든. 그런데 그 책의 그 페이지를 안 봤더라면 글이 다 틀어질 뻔한 경우가 참 많아. 그 책의 어떤 문장에서 막혔던 게 뻥 뚫리는 거지. 문운이 있듯이 무운이라는 것도 확실히 있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이어령 저

위 말씀을 들으면서 나도 그런 적 있다며 저처럼 무릎을 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 같아요. 글 쓰는 것뿐 아니라 모든 삶에서 무언가 막혔다고 느낄 때 ‘영성’은 찾아옵니다. 그러니까 ‘영성이 오는 것을 아는 나’는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면서 빛줄기처럼 다가오는 영성을 맞을 준비를 하면 되는 거죠. 때론 순간의 섬광처럼 때론 오후의 햇살처럼 때론 아름다운 오로라가 되어 다른 기쁨이 되어줄 영성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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