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우진 Aug 28. 2019

누구의 조언을 들어야 할까?

<친구의 친구>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다.


"좀비! 잘 살고 있어?"


날 좀비라고 부르는 걸 보면 고등학교 친구인데 누구지?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떠오르지만 대뜸 누구세요?라고 할 수 없으니 모호한 안부인사로 탐색전을 펼친다. 이름을 들었는데 누군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다. 큰 의미 없이 몇 마디가 오고 간 이후 다행히도 기억이 되살아났고 반가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친구 A가 정말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와서 연락한 것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기로 하고 평소 자주 만나던 친구 B와 셋이서 약속을 잡았다. 약속 날이 되어 만난 A는 10년이 훌쩍 넘은 시간에도 옛 모습 그대로였고(좀 어른스러워지긴 했다) 우리는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동안의 썰을 어느 정도 풀어낸 이후 난 한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근데 무슨 일로 보자고 한 거야?"


사실 연락 한번 없던 친구가 갑자기 보자고 하는데 의구심이 들긴 했었다. 반가움 반 의구심 반의 마음으로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경계심이 누그러지기 시작했고 편한 마음으로 물어볼 수 있었다. 이런 나의 물음에 친구는 동생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친구 B와는 어느 정도 연락을 주고받던 A는 주위에 공무원 시험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았고 B는 당연히 내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물론 이걸 물어보기 위해 한국을 찾은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한국 온 김에 생각나서 연락해봤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런 질문이라면 얼마든지 대답해 줄 수 있지! "


나는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답변해줬고 친구는 동생에게 잘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친구 A는 영국에서 건축 디자인과 관련된 일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 사회를 벗어난 지 오래되어 평소에 연락하고 지내던 사람 사이에서는 너무나도 한국적인 '공무원 시험'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터넷으로 구할 수 있는 정보들보다 좀 더 생생한 경험을 듣고 싶었던 친구는 '잊힌 네트워크'의 힘을 빌려 해결하였다.




'잊힌 네트워크'는 사회학자들이 '약한 유대관계'라고 부르는 것과 닮아 있는데 이것은 가족, 직장동료, 가장 친하고 연락을 많이 하는 친구들로 대표되는 '강한 유대관계'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관계가 있긴 하지만 거의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 사이를 말한다. '강한 유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편안함을 주고 동질감을 만들어 '믿을 수 있는 의견'을 준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믿을 수 있는 의견'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디지털 혁명이 시작되던 시절 즉석카메라로 유명하던 폴라로이드사의 예를 살펴보자. 1948년 랜드가 즉석카메라를 개발한 이래로 굉장한 성장을 했지만 디지털 혁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고전하기 시작했다. 위기가 닥쳐오자 랜드는 외부의 의견을 차단하고 강한 유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만을 듣고 제품을 만든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즉석 영화 카메라인 폴라 비전이다.

폴라 비전과 카트리지 재생기. 캠코더가 없었다면?

폴라 비전은 카트리지 하나당 약 3분가량의 동영상을 저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일 시기에 카트리지 하나당 한 시간가량 촬영할 수 있는 캠코더가 이미 보급되어 있어서 폴라 비전은 대실 패하게 된다. 제품 개발을 주도한 랜드에게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단지 랜드와 생각을 공유하는 강한 유대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의견만 옳다고 생각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다.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은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말 중요한 요소이다. '약한 유대관계'는 새로운 정보 습득 면에서 굉장한 장점을 가진다. 전혀 다른 맥락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새롭고 신선한 조언이나 예상치 못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이 '약한 유대관계'의 힘은 여러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는데 경영자 MBA 과정을 밟고 있는 224명의 임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가 인상적이다. 


 연구팀은 적어도 3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지만 회사의 주요 프로젝트에 조언을 해줄 만한 두 사람을 골라 다시 연락을 하도록 참가자들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회사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미 조언을 구한 바 있는 두 사람의 현재 인맥을 고르게 했다. 설문조사의 결과에 따르면 옛 동료들은 큰 도움이 됐다. 휴면 상태의 유대관계에서 얻은 조언이 현재의 인맥에서 얻은 조언보다 가치가 있을 확률이 더욱 높았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로 옛 동료를 고르라고 요청했을 때, 가장 뛰어난 사람을 선택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 실험을 진행하였다. 휴면 상태의 인맥을 10명을 골라 예상되는 유용성의 정도에 따라 순위를 매겼다. 이후 무작위로 선택한 한 명과 가장 높게 평가한 사람에게 연락을 하게 한 뒤 조언의 가치를 측정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두 경우 유용성이 비슷하다고 측정되었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것은 조언의 유용도가 능력보다는 휴면 상태라는 사실 자체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준다. 


그렇다면 '약한 유대관계'의 힘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나와 전혀 다른 상황에 있을수록 좋은 걸까? SNS를 이용해 소통하는 사람들은 정말 작은 주제를 가지고도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게시물에 단 댓글과 좋아요를 통해 공감을 표시한다. 이런 유대감으로도 '약한 유대관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유대관계의 힘이 발휘되려면 기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잊힌 유대관계'야 말로 조언을 구할 최적의 그룹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만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친구와 다시 만나도 별 어색함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것처럼 이미 형성된 신뢰관계를 활용하는 것은 새로운 신뢰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쉽다.  해결하지 못한 고민이 있다면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 연락을 해보자. 


"친구야 잘 지내고 있니?'


100% 도움이 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각지도 못한 돌파구가 생길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1. 친구의 친구, 데이비드 베커스

2. 오리지널스, 애덤 그랜트


#체인지그라운드 #씽큐베이션 #친구의친구 #서평 

작가의 이전글 경험이 부족한 사람의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