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부부의 세계> 마지막회를 보며 생각하는 '관계'
8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을 분노하게 하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들며 팽팽히 긴장시켰던 드라마 <부부의 세계>가 5월 16일, 16회를 마지막으로 종영했다.
스토리가 결말로 달려가는 내내 '작가가 원래 이런 스토리를 쓰려고 했던 것일까?' 하며 고개를 갸우뚱해했지만, 마지막 지선우의 독백에 이르러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우리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이태오의 파렴치한 짓을 보아왔다. 드라마에 굳이 감정이입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시청자라도 불륜 커플 이태오와 여다경이 망하기를 조금은 빌었을 것이다. 천하에 나쁜 인간들 아닌가.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드라마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자신을 배신한 전남편에게 통쾌한 복수를 안겨준 지선우의 표정은 행복하지 않아 보이니 말이다. 어쨌든 그는 아들 준영의 아버지이고, 준영이 살아 있는 이상은 자신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었을까?
국민 나쁜놈이 되어버린 이태오는 어떨까. 그가 모든 것을 잃고 허탈한 표정으로 걸어갈 때, 그리고 지선우에게 악마라며 소리칠 때. 그가 처음으로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왠지 우리 모두가 원했던 복수는 이런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모습에 통쾌함이 아니라, 씁쓸함이 남았다.
그들은 아들 준영이를 차지하려고 서로를 미워하고 안달하며, 물어뜯으며 동맹해 왔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서로에게서 아들을 데려오려 난리를 칠 때마다, 어떤 것도 그들의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그들이 간절히 원했던 것은 과연 아들 뿐이었을까? 두 사람은 아들 너머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선우의 독백에서 이태오는 '심장을 난도질했던 가해자이며, 적이자 전우였고 동지이자 원수였던' 사람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또 그만큼 증오하였고,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아들로 인해 동맹하고 맞서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준영이의 자발적인 선택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준영이는, 그들의 사랑과 복수에 상처받는 아들만인 것은 아니다. 상처받고 괴로워하며 그들을 선택해야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들을 미워하고 자신의 선택을 하고자 하는, 자유를 추구하는 타자인 것이다. 준영의 도피 앞에서 지선우와 이태오도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삶의 대부분을 나눠가진 부부 사이에 한 사람을 도려내는 일이란 내 한 몸을 내줘야 한다는 것, 그 고통이 서로에게 고스란히 이어진다는 것. 부부간의 일이란 결국 일방적인 가해자도 무결한 피해자도 성립할 수 없는 게 아닐까?
<부부의 세계> 는 마지막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의도를 전달한다. 이들의 치정과 복수들은 결국 이것을 깨닫기 위한 과정일 뿐이었던 것. 드라마를 재밌게 만들어 주는 요소 그 이상도 아니었다. 지선우는 처절한 싸움 끝에 마침내 깨닫고 만다. 자신의 모든 행동들은 결국 그가 사랑했던 남자 그 이상으로, 그의 일부였던 이태오를 떼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이었던 것이었다.
고예림이 울면서 손제혁에게 여전히 그를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저지른 외도에 대한 트라우마를 고백하며 불안함을 토로한 것처럼, 한번 깨진 관계는 붙일 수가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관계가 끝나는 시간과 상대를 끝내는 시간은 다르다. 상대를 향한 모든 감정과 사랑을, 더 나아가 그를 사랑하며 깊이 관계했던 내 자신의 모습까지는 일순간에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지선우는, 애초에 자신이 배신당했다는 사실이 주는 고통과 상처 때문에 견딜 수 없고, 또 자신이 사랑했던 이의 믿을 수 없는 실체에 치를 떨며 깔끔히 도려내버리기로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도려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가 내 인생에서 말끔히 사라진다고 해도, 그를 사랑했던 내 자신까지 사라져버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 없이, 그 시간을 보냈던 나의 책임자로서 내가 안고 가야만 하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깊이 관계하고 자신의 일부인 자식을 키우면서 사회적 책임까지 함께했던 이들의 결말은 통쾌한 복수가 자리한다 해도 결코 해피엔드일 수는 없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결혼에 대해, 누군가와 깊이 관계한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언제나 타인에게는 내가 모르는 다른 면의 모습들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드라마를 보고 '비혼'을 생각하게 된다는 댓글들을 많이 보았다. 이태오같은, 여다경같은 인물을 상상하다 보면 차라리 혼자 외롭게 사는 것이 나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언제나 드라마일 뿐. 현실은 내가 하루하루 맞닥뜨려야 하는 것들이다. 내 통제 아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나게 되는 것들. 감싸안고 화해하며, 돌아설 것들.
글을 마치기 전에 지선우가 깨달았던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관계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훨씬 많을 수도 있다. 이유는 모든 관계에 일방적인 것이란 없기 때문에. 그래서 누군가를 만나 누리게 될 사랑과 행복 뿐만 아니라 겪게 될 아픔과 시련도 어느 부분은 우리의 몫이다. 시련을 겪지 않고 행복하게 해달라는 바람에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그것들과 함께 잘 지내고 힘든 날이 와도 견딜 수 있는 법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