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할 때 만난 산의 풍경에서
저번 주말,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비가 온 다음날이어서 그런지 공기가 선선하고 청량한 느낌이 좋았다. 오르는 길 옆으로 흘러가는 물소리.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들의 소리. 살짝 젖어 있어 물렁한 흙의 소리.. 왜 사람들이 산에 오는지 알 것 같았다. 바빴던 일상을 멀리 두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일은 퍽 멋진 일이니까.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산에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인내와 체력을 요하는 일이었다. 오른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숨이 가빠져 오고, 가파른 길들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 이제 시작인데. 여기서부터 힘들면 조금 더 올라가서는 어떡한단 말인가. 지금이라도 내려가 커피 한잔을 마시고 돌아가는 것이 현명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도 빠르게 올라간다고 아침 일찍이 채비를 하고 나왔건만, 이 시간에도 이미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이들 이 보였다. 항상 부지런한 사람들은 있구나. 저 사람들보다 더 일찍 내려와 아침을 먹고 돌아간 이들도 이미 있겠지. 그들이 몹시 부러워졌다. 나는 이제 절반도 오르지 못했는데. 그때는 그냥 숨이 턱끝까지 차올라 있고, 높은 곳으로 쉴 새 없이 힘을 실어 움직여야만 하는 두 다리가 이미 지쳐 있어서, 빠른 걸음으로 여유 있게 산을 내려가는 그들이 그리 좋아 보였던 것 같다. 분명히 그들도, 이 시간을 이미 보냈을 것이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여유롭게 산을 내려가고 있지 않은가! 언제나 우리는 '지금' 만을 보니까.
나는 지금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다. 졸업이 한 학기 남았고, 이제부터는 나도 학생 신분에서 벗어나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어떤 것이든 배우는 것과 쓰는 것을 즐거워하는 나는, 대학원 진학을 진지하게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괴롭히는 생각은 여러 가지다. 첫 번째. 너무 늦은 것이 아닌가? 공부를 할 것이었으면, 긴 휴학 기간을 거치지 않고 공부를 시작했어야 하지 않을까? 이미 내 또래들은 대학원 졸업을 하고도 남고, 이미 나보다 한참이나 앞서가고 있다. 두 번째. 나에게 과연 그 분야에 재능이 있는가? 과연 재미있어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분야를 내 직업으로 삼겠다는 것이 너무 무모한 일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침내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산은, 가파른 길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거쳐서야, 비로소 그 끝을 보여주었다. 언제 그렇게 힘들었냐는 듯, 마음을 트이게 하는 풍경보다는 여기까지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올라왔다는 성취감 때문에 마음이 시원했다. 그리고 산을 내려가는데, 산을 올라오는 이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길에,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던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벌써 올라갔다 내려오는 거예요? 나는 이제 올라가는데.. 부지런들 하시네."
그랬구나. 내가 산을 오를 때 내려오는 누군가를 보고 했던 생각을 다른 누군가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벌써' 라니. 당연했다. 그녀는 이제 오르는데, 우리는 내려가고 있으니. '벌써'라는 부사에는 어떠한 의미도 없다. 어디에도 '이미', '벌써', '이제야'라는 것은 없었다. 그저 상대적인 것일 뿐..
어떤 것이든 늦는 것이란 없다. 물론 시간에 있어 '먼저' 가는 것과 조금 더 '나중' 은 존재하겠지만. 그녀도 결국 산을 오를 것이고, 내려오는 길에 그녀를 보고 부지런하다 여기는 조금 더 나중의 등산객들을 만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산을 오르는 것. 하나의 같은 목표를 보고 오르지 않았나. 누군가는 새벽에 일어나 빠르게 왔다가 오후에 잠을 청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체력을 위해 느지막이 일어나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두 같은 산을 오르는 것이고, 산에 올라서 느끼는 감정. 그것은 일찍 도착하든 나중에 도착하든 상관없이 기쁨과 성취감이 있는 일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국 이 산에도 끝이 있다는 것, 내가 어떤 보폭으로 가든 계속 가기만 한다면 결국 오를 것이라는 인내함을 가지고 오르는 일이다. 그리고 나타난 산 정상의 풍경과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그곳을 언제 올랐어야 좋은지, 오르기 위해서 어떤 능력들이 필요한지 등은 결국 이곳에 오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들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줄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