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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May 09. 2023

사랑과 진리의 품에 안겨 떠나는 모험

조지 맥도날드 <북풍의 등에서>

지난 5월 5일에는 전국적으로 비가 아주 많이 내렸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광주 지역은 가뭄 위기로 긴장하고 있던 터라 오랜만에 콸콸 내리는 비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평소라면 날이 흐리고 몸이 젖는 것이 싫었을 텐데 이번에는 얼마든지 젖어도 좋으니 많이 내려주기를 바랐다. 비가 쏟아지는 그날 저녁 나는 식사거리가 없어 밖으로 나갔다. 김밥 한 줄을 포장하고 중고서점에 들렀다. 관심있는 코너를 둘러보았다. 딱히 어떤 책을 사러 온 건 아니지만, 서점 구경은 늘 즐겁다. 특히나 예상치 못한 좋은 책을 발견했을때 그렇다. 


그 날, 대지를 시원하게 해 주는 비와 바람이 광주에 찾아왔듯이 내 마음에도 바람을 일으켜 눈가를 뜨겁게 하고 미소를 짓게 하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조지 맥도널드의 <북풍의 등에서(At the Back of the North Wind)>. C. S. 루이스가 많은 영향을 받은 판타지 작가라고 해서 늘 궁금했는데 다른 읽을것들에 밀려 늘 미루고 있었다. 그 날은 왠지, 그 이름을 검색해 보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북풍'이 내 귀에 속삭여 준 것 같다. 맥도널드의 책이 한 권 있었고, 어린이 코너에 동화로 분류되어 있었다. 



생각보다는 두꺼운 두께, 양장본, 그리고 중고책치고는 비싼 가격인 7000원 정도의 가격. 나는 망설였다. 하지만 책 표지에 어린아이와 젊은 여성이 손을 잡고 달빛 아래에서 너울거리듯 춤을 추고 있는 그림이 너무 예뻤다. 책 커버가 없어 줄거리도 모르지만, 첫 한두페이지가 잘 읽혔다. 집에 책이 쌓이는 것이 달갑지 않지만 비오는 날 읽을 책이 필요하기에, 구매해버렸다. 고마워요, 북풍!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고난 후의 지금의 나는 다르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독서이다. 문학에서 판타지란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작품 소개를 간단히 하자면 이 이야기는 꼬마 남자아이 '다이아몬드'가 어느 날 자신의 침실에 들어온 바람인 '북풍'을 만나게 되면서 그와 함께 겪는 모험들과 동시에 그와 그의 가족이 여러 어려움들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북풍은 늘 다이아몬드가 잠든 뒤 찾아오기 때문에 그와의 모험은 꼭 다이아몬드의 꿈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야기에서는 북풍과의 모험을 쉽사리 믿지 못하는 우리의 실제세계가 존재하고, 북풍과의 모험에서는 늘 환상적인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꿈'일까? 꿈이라면 그것은 꼬마 다이아몬드에게 너무나 생생한 꿈이다. 꿈에서 만난 여인인 북풍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에게 배운 것과 함께 본 것들로 인해 다이아몬드는 자신과 가족들, 자신과 전혀 관계없는 거지 아이에게도 선한 손길을 뻗을 수 있게 된다. 


다이아몬드의 북풍을 믿고자 하는 마음이 충분히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도 언젠가 북풍의 뒤에서 그녀의 검고 긴 머리카락을 잡고 창공을 누비며 언젠가 '북풍의 뒤편'에 가서 우리가 꿈꾸던 장소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지 않겠는가. 꼭 그것을 소망할 수 없다고 해도, 나는 '북풍'을 떠올리면서 이 이름이 내가 평소 사랑하고 부르던 것들과 어떻게 닮아 있는지 살펴보고 그것들을 붙잡고 만나는 즐거운 생각들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의 맛을 느끼고, 나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다. 


책 첫머리에서 맥도날드에 대한 소개



많은 사람들이 맥도널드를 알았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북풍의 등에서>를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은 언뜻 보면 어린아이를 바르고 건실하게 자라도록 주인공인 다이아몬드를 통해 좋은 본을 보여주는 교육적인 동화로 보일 수 있고, 많은 부분에서는 그러하다. 맥도날드 자신도 "다이아몬드의 선량함"을 드러내는 것이 작품의 주된 동기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그것 이상의, "고귀하고 높은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북풍이 아름다운 여인이나 작은 요정, 혹은 날카로운 늑대 등 여러 모습으로 변했듯, 그 "어떤 것"도 사랑이나 선이나 순종이나 지혜 등 여러가지로 나타나지만 그것을 결코 하나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런 면면들이 북풍의 모습과 다이아몬드, 그리고 간간히 주변 인물을 통해 드러난다. 작품을 읽다 보면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모습을 드러냈다 드러내지 않았다 하는 북풍처럼, 다이아몬드의 말과 행동을 따라가는 독자에게도 그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 모습을 포착하기란 어려운 그것이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진리란 '이것이다' 혹은 진리를 '말할 수 없다' 거나 진리는 '여러 가지여서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라는 설명보다 이러한 문학이 인간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바람과 햇살이 훨씬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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