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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라 Apr 22. 2023

절망하는 곳에 머물러야 한다

바로 그 지점이 나의 갈망과 사랑을 드러내기에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한다는 것은 마주하기 싫은 역설 중 하나다.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받을 상처도 현저히 줄어든다. 원하지 않으면 절망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기가, 무언가를 열렬히 원하기가 두렵다는 사람도 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이다. 먼저 사랑해서 상처받을 바에야 무관심하게 거리를 두는 것이 낫고, 얻지도 못하는 것을 얻을 바에야 애초에 꿈도 꾸지 말자. 있는 것에나 감사해야지.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그러한 상태에만 머무를 수 없는 존재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우리가 보는 것, 느끼는 것은 모두 변한다. 우리 자신의 감각이나 느낌도 어제와 오늘은 같지 않다. 불과 몇 달 전에 감탄하며 골랐던 옷은 몇 번 입으면 금새 단조로운 옷장 속의 옷들 중 하나가 된다. 반대로 몇 년 전까지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던 소설이나 음악, 영화가 오늘 나에게 딱 맞는 메세지와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계속 변한다. 하지만 '무언가'를 계속 원하고 있다. 무언가가 나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기를 바라고 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좋아하는 것도, 어떤 것을 성취하려는 열망도 시들해졌다고 해도, 그가 원하는 것이 사라져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태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전에 열렬하게 반응했던 것들이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거나, 역동적으로 무언가를 바라고 앞으로 나아갈 체력이나 추진력은 이전에 비해 약해질 수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멀든 가깝든 '앞을 바라보고', '무언가'를 바라는 존재이다. 


얼마 전, 나에게 이루고 싶은 소망이 하나 생겼다. 그러나 그것을 입밖으로 내기도 민망할 정도로 지금의 나는 그것을 이룰 만한 실력이 없다. 한 번 그런 소망을 품고 나니 삶이 아주 고통스러워졌다. 도달하고 싶은 위치와 현재의 현재의 거리감을, '절대 닿을 수 없음'을 매 시간 피부로 느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소망이 없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고통이었다. 그것은 지금의 초라하고 별 볼일 없는 나의 실력을 시시각각 일깨웠다. "봐, 너는 절대 안 돼. 그리고 이미 너무 늦었어." 무엇보다 내가 그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이 들 때 그것은 나를 더 아프게 때렸다. 


나는 무조건 기합을 넣고 긍정의 힘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나이는 지난 것 같다. 아직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10년 전의 나보다는 자기 자신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습득하고 싶은 능력은 서른 살의 나에게 너무 늦은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거북이같은 속도, 개복치같은 체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포기하는 게 맞다. 나는 계속 되뇌었다. 그것을 이룬다고 해도, 거기가 끝이 아니다. 도달한 즉시 나아가야 하고 성과를 내야 하는데, 그 자리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내가, 어떻게? 지난 일주일 간 나는 그 소망과 꼭 붙어 존재하는 절망과 함께 일어나고, 잠에 들었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나는 그것들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 절망이 의미하는 바를 숙고했더니 깨닫는 것이 있었다.


나를 그토록 절망하게 하는 그 지점이 바로 내 마음이 있기를 갈망하는 곳이며,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 절망에서 무언가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그것을 원하고, 갈망하고, 사랑하니까 절망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의 소망이 아니었다면 절망도 없었을 것이다.  


절망은 고통스럽다. 회피하고 싶다. 나 자신의 형편없음과 아직도 채워나갈 부분들을 보자면 그냥 못 본 척 눈을 감고 싶다. 인생에는 해결해야 하는 일이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그것을 그토록 사랑한다는 반증이라면, 그곳에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과 별개로 그것을 꾸준하게 사랑할 수는 있지 않은가. 


오늘 우리를 그토록 절망케 하고 넘어뜨리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곳은 우리의 사랑과 애정 또한 깃들어 있을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상처받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우선 나는 조금 더 머물러보기로 한다. 그것이 더 이상 나를 절망케 하지 않을 때까지. 소망이 실현되는 때이거나 아니면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되는 때일 것이다. 이왕이면 전자이기를 바라고, 또 그럴 것이라고 본다. 사람도 사랑도 변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국 형태를 바꿔 입는 것에 불과하고, 나의 인생에 걸쳐서 사랑하고 소망하는 것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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