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F.Chopin - Polonaise in A flat major, OP.53 (조성진)
쇼팽 폴로네이즈 '영웅'
그의 손가락은 현란하게 파고드는 흰 물결 위에 있다. 어떤 박자에 맞춰 검은 물결도 일렁거린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듣는다. 만약 연주하는 것이 그의 육체와 더불어 그의 영혼이라면, 충만한 경지 위에 서 있음이 틀림없다. 그 감각들은 손끝에서 날카롭게 살아난다. 가끔은 기민하게, 가끔은 약간 둔하게.
아름다운 선율에 취해 있으면서 그의 손끝을 따라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모든 느낌은 손끝으로부터 그의 몸에, 얼굴에, 내면에까지 전달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 내면과 몸으로부터 모든 것이 흘러나와 비로소 손끝으로 터뜨려지는 것일까?
순간을 아름답게 보내는 최고의 방법은 음악을 듣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음악에, 자연도 연주했을 법한 음악에 가만히 몸을 기대어 보는 것이다. 무언가를 위해 잡고 있었던 것은 잠시 느슨히 놓아두면서,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잠시 차단하기 위해 눈을 감고, 귀는 오직 그 선율의 진동에 반응하면서. 어쩌면 신은, 과거에 붙잡히고 스스로 미래에 매여 있느라 지금을 살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음악이라는 것을 주신 것이 아닐까?
조성진이 연주하는 그 아름다운 음악도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것이다. 내면에 흐르는 무언가를 건져 올려 종이 위에 옮기고 마침내 건반을 거쳐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만들어낸 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 듣는 이 곡은 쇼팽이 작곡했다. 그 이의 마음에는 어떤 강물이 흐르고 있었을까? 그는 어떤 선율을 만났을까? 그것은 또 다른 사람일까? 그것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그 안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눈멀어 볼 수 없는 자연의 모습이 있을까? 그것 중 하나라도 본다면 우주의 비밀 하나 정도는 쉽게 간직할 수 있을 텐데.
나에게 아름다운 것들- 음악, 그림, 영상으로 담아내는 사실적인, 왜곡된 혹은 해석된 세계-을 보고 있자면 나는 결국 그것들을 가능케 한 영감의 원천이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모든 감각과 인상들의 원천. 우리로 하여금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우리 안의 성정이 무엇인지도. 만약 그 원천을 사람처럼 생각해본다면, 그는 작곡가일까? 아니면 화가일까? 혹은 건축가일까? 시인일까? 이 모든 아름다움을 가능케 한 것은 누구이며, 우리는 왜 그것을 느끼도록 만들어졌을까? 그 아름다움의 열쇠를 지니고 있는 이를 만나기 위해 하루하루 살아간다고 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