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를 보내면서
한마리 새가 땅에 떨어졌다. 나무 아래, 짧게 깎인 잔디 위였다. 마치 처음에는 그곳에 앉으려고 했던 듯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러나 이쪽에 서 있는 내가 조금이라도 가까이 움직이면 언제든 날아갈 듯 종종거리며 방어하는 내가 봐오던 새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둥지라도 틀듯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새는 내가 다가오자 그저 허무한 날갯짓을 몇 번 할 뿐,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는 그 움직임마저 멈춰 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죽은 듯이.
그걸 본 나는 일말의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당장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만큼 새는 박물관에 박제된 것처럼 어떤 움직임도 없이 눈을 뜨고 앉아 있었다.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어 갑갑했다. 흥부전에서는 흥부가 다리 다친 제비의 발을 치료해준다. 그래서 날아갔던 제비가 은혜를 갚으러 돌아오기까지 한다. 지금 보니 새가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와 다른 몸을 가진 새를 어떻게 치료해 줬는지도 의문이다. 붕대 한 번 감아줬다고 새의 부러진 다리가 붙나? 나는 새가 죽었다고 믿기 싫었다. 나뭇가지로 몇 번 건드려 보았다. 새는 미세한 반응조차도 없다. 그제서야 나는 새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편안하고 소리 없는 죽음이라니.
내가 새를 본 그 곳은 장례식장이었고, 그 날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외할머니는 갑작스런 뇌졸중이 찾아온 뒤로 수술을 거쳐 요양병원에 계셨다. 그곳에서 지내시다 갑자기 돌아가셨다. 연락을 받은 건 이른 아침이었다. 나는 그 때 외할머니 댁에서 지내고 있었다. 일요일 아침 7시에 자고 있었는데, 외삼촌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외삼촌은 푹 잠긴 목소리로 할머니 집에서 사진을 좀 찾아보라고 했다.
장례식장이 정해지기 전까지 나는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 집에서, 일순 주인을 잃어버린 물건들을 천천히 마주했다. 사진을 찾으려고 꺼내 놓은 앨범에서 지나간 시간들을 만졌다. 열어본 적 없는 옷장을 열었다. 할머니가 좋아하던 화려한 색깔의 꽃무늬 자켓들, 하늘거리는 스카프들이 처량하게 걸려 있다. 자그마한 체구와 하얀 피부를 가진 할머니는 화려한 옷들이 잘 어울렸다. 천주교인이었던 할머니의 세례명은 '리디아' 이다. 리디아는 매일같이 성당 사람들과, 이웃들과 놀러 다니기를 좋아했다. 리디아는 누가 피부에 좋다거나, 건강에 좋다거나 하는 것들을 열심히 알아다가 사다 쓰고, 생활고에 지친 딸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뇌졸중이 오고 난 이후 병원에만 있어야 했고, 코로나가 장기화되자 가족들의 면회도 어려워지게 되면서 할머니는 '죽고 싶다' 는 말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그것은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 라는 뜻이었다. 하루라도 나가지 않으면,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좀이 쑤시던 할머니였다. 할머니의 딸인 엄마는 집순이인데, 그런 엄마를 딸이지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할아버지 말을 다 따르고 꼼짝도 못했다는데, 지금은 할아버지가 출출하다며 간식의 간자만 꺼내도 귀찮게 한다며 불호령을 쳤다. 그렇게 불같으면서도 생기 넘치는 할머니였다.
엄마가 말씀하시기를 할머니는 외로운 사람이라고 했다. 할머니의 부모님은 할머니가 정말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 때는 다 그랬다고 해도 어린 나이에 결혼해 시집살이를 시작하고 남편과 시부모님을 뒷바라지하며 자식 셋을 키워냈다. 할머니는 늘 사랑이 고팠다. 무조건적인 사랑과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어린아이때부터 결혼을 앞둔 소녀일 때도, 큰아들을 품에 안았을 때도, 자식 셋이 잘 자란 뒤에도. 늘.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에 공허했다. 누군가가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면 자신의 온 마음을 쏟았다. 그러나 상대가 자신의 기대만큼 사랑을 주지 않으면 분노했다. 그 분노 뒤에는 채워지지 않는 시린 공간이 있었다.
몇 시간 뒤 새가 아직도 그 자리에 죽어 있을까 싶어 나와 보았다. 아직도 그곳에 있다면 장례식장 관계자에게 말해 처리를 해 달라고 할 셈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 없었다. 어디 갔을까? 마침 그 때 내 머리 위에서 청아한 새소리가 들려왔다. 소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그 새였다. 빨간 열매를 쪼아먹고, 몇 번 울더니만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나는 멍하게 새의 뒤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여기 죽은 듯 누워 있던 그 새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순간적으로 그 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것 아니냐 묻는다면 그렇다고 할 수밖에 없지만, 그 새라고 생각한다.
새의 울음소리는 마치 연약한 육체를 벗어 버린 영혼의 힘찬 소리 같았다. 힘찬 날갯짓은 이제 막 새 삶을 시작한 영혼의 움직임 같았다. 그 새는 움직일 수도 지저귈 수도 없던 그 마른 잔디 위에 있던 새가 아니었다. 새가 떠나고 텅 비었지만 여전히 광활한 하늘을 본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하늘을 올려다보곤 한다. 아직 땅에 발 디디고 서 있는 나는 그를 볼 수 없지만, 우리가 같이 있지 않더라도 지금 그의 영혼은 무엇보다도 넓은 세상에 자유롭기를 원한다. 우리가 사후 세계를 믿든 믿지 않든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할 때는 '좋은 곳 가서 편히 쉬세요 (rest in peace)' 라는 말을 한다. 생전에 그를 힘들게 하고 죽음으로 이르게 했던 고통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삶이 그곳에는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남아 있는 사람이 바랄 수 있는 전부다.
이미 멀리 날아가 보이지 않는 새를 본다.
여기에는 새가 울었던 소리의 울림만이, 할머니 집의 끼이익대는 철문의 소리만이,
왔냐며 문을 열어 주던 할머니의 목소리와 활짝 웃어 주름진 눈가와 입가,
작은 몸을 일으켜 나의 손을 잡던 온기만 희미하게 남았다.
할머니는 사랑스러운 분이었다. 그곳에서는 사랑 가득하게 사시길 원한다. 나와 가족들의 눈물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더 사랑 주지 못함에 대한 눈물. 우리가 다 하지 못했던 사랑이 그곳에는 가득하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