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합리적인 삶이 목표입니다

나를 바꾼 비합리적인 결정들

by 아일라



지난봄 학기 수강신청을 하는데 흥미로워 보이는 과목이 있었다. 물리학 기초를 다루는 교양 수업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과학지식을 많이 요하는 것은 아니었고, 물리학에서 다루는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토론하고 훑어보면서 토론하는 강의였다. 강의계획서에는 '물리학 지식이 없어도 환영한다'고 되어 있었고 배우게 될 주제들이 흥미로워 보였다.


한번 수강해볼까? 하다 잠깐 멈칫했다. 나는 중학교 이후로는(아니, 거의 초등학교 때부터이다) 과학에 흥미를 가진 적도, 열심히 공부한 적도 없다. 중학교 때 덩치가 아주 큰 지구과학 선생님에게 많이 혼났다는 것 그리고 고등학교 때 물리 선생님을 좋아했던 기억밖에는 없다. 수업 때마다 물리 선생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열심히 듣는 척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학창 시절 과학에 대한 기억은 그것뿐이다. 과학은 내게 아무 재미도 없이 삶과 관련 없는 지식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것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철학을 공부해 보니 철학도 늘 과학의 발전과 변화에 맞추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을 이해하려면 인간이 살고 있는 자연도 이해해야 함을 느꼈다. 그것들을 접하다 보니 과학의 과 자도 모르는 나 자신에게 많은 배움과 흥미를 가져다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학점이었다. 내가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하는 학점은 전공학점만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물리학 수업은 교양 학점이기에 필요한 학점은 아니었다. 그것을 감수하고 이 수업을 듣는다 해도 아직 학점이 많이 남아 있어 자칫하면 추가학기를 다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수업을 듣는 일은 '완전히 비합리적'이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해서 좋은 학점을 받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난 지금 교환학생으로 카자흐스탄에 와 있다. 내가 교환학생을 다니는 학교는 경영이나 마케팅, 국제관계 등의 전공에 특화된 학교로, 내 전공인 철학은 고사하고 더더욱 인문사회계열의 학부조차도 없다. 말하자면 내가 학점을 채울 수 있는 수업들이 '없다'. 여동생은 나에게 '한 학기 휴학한 것이나 마찬가지' 라며 웃었다. 가기 전에는 다들 왜 카자흐스탄이냐고 물었고, 가고 나서는 왜 이 학교에 왔냐고 물었다.




그러나 물리학 수업은 내게 학점 그 이상의 것을 가져다주었다. 우리 세계를 이루고 있는 한 부분인 과학현상들의 경이로움, 저 너머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비한 일들.. 물리학이었지만 철학적인 생각들을 요하게 하는 수많은 질문들이 생겨났었다.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따분한 과학현상일지 모르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새로웠기 때문에, 하루하루 알아가는 재미에 몸을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 인해 여러 물리학 서적을 찾아 읽게 되었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연의 경이로움에 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카자흐스탄에서 이국의 땅에서 낯선 언어를 배우며 사는 것 자체가 나에게 여러 가지 생각들과 쓸 것들을 가져다주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언제나 꿈꾸던 것이기 때문이다. 학점을 채우지 못하는 수업들이지만 나의 궁금증을 채워주며 기존에 배우던 것에서 벗어나 공부할 수 있는 수업들을 듣는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높은 점수를 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 속에서 나는 진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난 여기서 '수사학과 작문'이라는 특별한 수업을 만나게 되었는데, 수업은 철학과 영문학 사회학을 아우른다. '영화 입문'수업은 내가 언제나 꿈꿔 왔던 첫 영화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가지지 못했을 귀중한 기회들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는 길만큼은 미래를 위해 합리적으로 계획하고, 그 목표에 맞추어 달려가는 것을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아가는 이들을 볼 때, 나 또한 내가 선택한 길들이 불안해 보일 때가 있다. 나중에 가서야 멍청한 선택이었다며 후회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선택을 마주할 때 매번 느낀다. 나는 그저, 누군가는 비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길을 가야만 하는 사람인 것 같다. 만일 내가 대학을 다니고 수업을 듣는 것의 목적이 학점을 빨리 채워서 제때에 졸업하는 것이었다면 나는 아쉬운 마음에 물리 수업을 들을 수도 없었을 것이고, 카자흐스탄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도 분명히 합리성을 추구하는 면이 있지만, 그것은 비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때 얻을 것보다는 조금 덜 중요한 것이다. 평소와는 다른 선택을 해서 즐거움을 얻게 된다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된다. 그리고 언제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결정들에도 나름의 합리성과 경제성은 늘 숨어 있다.



우리의 삶에서는 비합리적이지만 인간적이고, 시간이 걸리지만 많은 것을 남기는 것들이 꽤나 많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의 부수적인 것들, 큰 결정이 아닌 것들만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더 조심스러워서 그럴 것이다. 큰 결정들에는 아무래도 많은 책임이 따르는 법이니까.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당연해 보이는 합리적인 길이 아니라, 비합리적이지만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별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나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고 그것과 관계 맺을 때, 내 삶에 좋은 변화가 이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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