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볼 것이다

가나안의 형들: 꿈을 죽이려 하다

by 아일라


그런데 모든 것의 발판이 되었던 꿈,

그것은 생각보다도 더 깊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형들은 요셉이 멀리서 걸어오는 것을 본다. 보나마나 오늘도 감시자로 행차하셨겠지. 우리의 사소한 잘못들을 아버지에게 쪼르르 달려가 고해바쳤던 녀석. 형제들은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비웃는 것도 같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


“보라,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창세기 37:19)


형제들 중 누군가의 말을 듣자, 모두 요셉이 말했던 바로 그 꿈을 떠올린다. 그들의 낯빛이 점점 어두워진다. 정말 저 녀석 앞에 우리가 고개를 조아린다고? 두 번째 꿈에서는 해와 달까지도 그에게 절했다고 한다. 이제는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자신의 발아래 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요셉의 꿈은 형들이 그에게 가진 시기심, 분노와 증오를 더욱더 격동시켰다. 그리고 그 순간 누군가가 그를 죽이자 말한다. 누가 먼저 그 말을 꺼냈는지는 모르나, 그 말로서 그들의 살인교사가 시작되게 된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져버리고, 우리가 한 게 아니라 악한 짐승이 하였다고 꾸미자. 이복동생을 죽일 잔인한 계획을 세우고 그 짐승이 악했던 것이라고 거짓말하자는 거다. 좋다. 요셉을 미워하는 이유는 납득이 된다. 그런데 정말 그가 죽어야 할 정도로 잘못했던 걸까?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기세등등하였거나 발칙한 꿈을 꾸어 떠벌린 것 정도의 일이 과연 장성한 형들이 모두 합세해서 어린 동생을 죽음에 내몰 정도의 잘못인 건가?

늘 그랬듯 비웃고 넘길 수도 있고, 아버지 몰래 흠씬 두들겨서 다시는 그런 꿈을 꾸었다고 입밖에도 못 내도록 해 줄수도 있다. 꼭 죽여야만 했을까? 평소에는 요셉 말이라면 껌뻑 죽는 아버지마저도 그 꿈에 동조하지 않았다. 요셉이 르우벤을 제치고 장자가 된 것도 아니고, 아직은 새파란 청년일 뿐이다. 그런데 어쩌다 그를 죽이려고 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걸까? 바로 그 꿈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시기심과 분노가 일으킨 충동에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 꿈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을 거란 사실 때문이다.


바로 다음 구절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그리고 이것은 요셉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바로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었다. 자신들이 미워해 마지않는 요셉. 그리고 그런 발칙한 꿈을 꾸도록 하신 하나님. 과연 우리가 요셉을 죽이면, 그 꿈도 죽어 사라질 것이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이 왜 요셉에게 절해야 한단 말인가? 하나님은 왜 그런 것을 계획한단 말인가.


당시의 사람들은 꿈을 통해 신적인 일들이 인간에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무언가를 경고하거나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던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그 꿈이 좋든 싫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하시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야곱도 요셉을 꾸짖으면서도 그 꿈을 마음에 담아 두었을 것이다(창 37:11). 꿈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었고, 결국 그분이 주신 것임이 결국에는 밝히 나타나게 된다. 그러면 요셉의 형제들은 그것을 몰랐던 걸까? 단지 시기심을 극대화한 촉매였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들이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고 했던 것은, 단지 요셉을 죽이려는 것만 아니라 요셉의 꿈을 죽이려 했다. 그것은 그들이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했든 하나님의 뜻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자신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 가인을 유혹하고 넘어뜨렸던 죄에 자신들도 걸려들었던 것이었다.



성경 최초의 살인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가인의 살인, 그냥 살인도 아닌 존속살인이다.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고 동생인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자 질투에 사로잡혀 동생을 살해한다. 경쟁자를 물리치면 자신이 더 나아질거라고 생각한 건지 우발적인 범행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인의 살인은 어찌 보면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 살인에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을 인간의 손으로 빼앗음으로써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며 자기 자신의 분노를 표출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셉의 형들도 그들은 시기심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온전히 보지 못했던 그들의 조상 가인과 똑같은 죄를 저지르려 한다. 그들이 요셉을 죽이려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도전과 불복임을 의식하지 못했다 해도 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겸손하게 받아들이면서 아우를 사랑하고 용서하기보다는, 자신들의 판단을 더 의지했다. 미움과 질투심이라는 파괴적 감정을 동반하여서. 그리고 보기에는 가장 쉬워 보이지만 남은 세월동안 자신들을 끔찍히 고통스럽게 만들 결정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이 악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내버려두셨지만 생명을 빼앗기까지는 허락하지 않았다. 요셉은 르우벤에 의해서 죽음을 피하고 유다에 의해 미디안 사람들의 노예로 넘겨져 다시는 볼 수 없으리라 생각되는 곳으로 떠나게 된다. 이 둘에게 남겨진 일말의 양심이나 계산으로 인해, 그리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붙드심으로 인해 요셉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이미 요셉 자신뿐만 아니라 형들 모두에게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형제들은 애원하는 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버린 요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 때 손에 피만 묻히지 않았을 뿐, 요셉도 그 꿈도 완벽히 사라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걸로 되었다고 생각했을까?


인간은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 죽음 앞에서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은 없어"라고 말한다.

살인자들은 자신이 생명을 마음대로 범하였다는 것을 보고 신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이 신이 된 것마냥 들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오직 하나님뿐이다.


그들은 간과하고 있었다.

그 꿈이 만약 하나님의 꿈이라면, 절대로 죽일 수도 없앨 수도 없다는 것을.


하나님에게는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 그러했듯,

그의 죽음으로서 모든 삶의 새로운 시작이 되었던 그 놀라운 일을 이룬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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